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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culating...

아, 있잖아... 음... 새로운 시작, 그리고 좀 다른 교육?

그, 파트 4에서 우리가 디자인 서사 있잖아, 그거의 결과 중 하나로 현행 교육 시스템을 살펴봤었잖아. 요즘 학생들은 시간... 시간에 걸쳐서 이렇게 수집된 가장 중요한 개념들을 배우고, 그걸 가지고 이제 졸업해서 뭔가 일을 할 때, 그걸 토대로 삼아야 한다고 기대받잖아. 이 서사는, 그러니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졸업 후에 솔루션을 디자인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전제에 기반을 두고 있는 거지.

근데 있잖아, 그 조각들, 부분들과 전체 사이의 단절이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는 그런 프로세스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도록 막는다는 거지. 복잡한 솔루션을 구축할 때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은, 있잖아, 사후에 나타나는 것들이라는 거야. 게다가, 필요한 시행착오를 시작할 때는, 좀 순진하게 행동하는 게 낫다는 거지. 그게 발견으로 이어지잖아? 기존에 배웠던 기본적인 것들을 가지고 개입하는 것보다는. 그런 개입은 복잡성 하에서 진보와 발견을 저해할 뿐이라는 거야. 이건 뭐, 책 전체에서 계속 이야기했던 내용이고.

사실, 요즘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부분의 주제는 디자인이라는 전제하에 진행되잖아. 우리가 뭐, 원자, 유전자, 시민 의식, 지질학, 미적분, 철자, 어휘, 구두점 이런 거에 대해서 배우는 이유도, 결국에는 이걸 가지고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인 거지. 이 지식과 사람들이 만들 솔루션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고... 그렇게 배우잖아. 철자랑 구두점을 배우는 건, 언젠가 중요한 글을 쓰게 될 거라는 거고. 미적분을 배우는 건, 우리가 조립할 기계 내부의 운동, 힘, 에너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거고. 시민 의식에 대한 지식은 더 나은 정부 프로세스와 구조를 만들 수 있게 해준다는 거지.

근데 있잖아, 이런 식으로 보는 지식은, 우리의 솔루션이 복잡한 것이어야만 하는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거야. 책을 예로 들어보자. 책은 복잡한 거잖아. 등장인물, 배경, 줄거리, 여러 개의 줄거리,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는 주제들이 있잖아. 독자에게 인상 깊게 남는 이야기는 이러한 구성 요소 간의 상호 작용에서... 종종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거지. 책의 요소들 사이의 역동성은 사건이 전개됨에 따라 진화하고. 좋은 글쓰기라는 건, 누군가가 서사 구조와 문학적 장치를 사용해서 단어를 이렇게 막 인도할 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야. 이런 것들은 직관을 표현하려는 엉망진창인 시도, 여러 번 반복된 시도 후에 나타나는 거라는 거지.

이게 지금 우리가 기술을 구축해야 하는 방식과 유사하다는 거야. 이전에는, 학계와 현실 세계 사이의 단절이 비효율적이었을 뿐이잖아. 학생들은 여전히 학문적 지식을 사용해서 자신의 분야 시스템 내부 작동 방식에 대해 추론할 수 있었고. 발견은 항상 시행착오에 기반을 두고 있었지만, 최종 구현은 디자인된 추상화로 구성되었고, 그 디자인은 학문적 지식과 모범 사례에 부합할 수 있었잖아. 하지만, 우리가 구축해야 하는 것이 복잡하다면,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거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 솔루션은 산업 혁명 시대의 기계보다는 책이나 예술 작품에 더 가깝다는 거야. 운동, 힘, 에너지에 대한 지식이 미래의 기계를 조립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더 나은 정부 프로세스와 구조는 시민 참여와 민주적 원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꿰매서 실현될 수 없다는 거지. 효과가 있는 솔루션은 자연의 솔루션처럼, 내부 작동 방식이 시행착오, 경험적 방법, 그리고 약간의 순진한 행동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것이어야만 한다는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중요하잖아. 인류 최대의 업적을 다음 세대에 가르치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거고. 이전 세대가 이룬 것을 보는 것은 다음 세대가 스스로 발견하고 더 나은 것을 만들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사람들이 다시 발견하고 재발명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하고. 그렇다면, 디자인 서사가 점점 다루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과, 우리가 이미 달성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개념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우리는 배움의 의미를 재정의해야 하고, 그건 다시 지식의 재정의로 돌아오게 만든다는 거지. 다시 말하지만, 복잡성 하에서 효과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건 논리적 추론과 함께 사용되는 메타 수준의 속성뿐이라는 거야. 속성은 원인에 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디자인 서사에 강건하다는 거지. 속성은 지도하거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달성되었음을 알리는 사후 신호 역할을 하는 거지. 복잡한 것들은 유효한 방식으로 구축될 수 있는 방법은 속성에 대한 관심 때문인데, 왜냐하면 속성은 사물을 작동시키는 내부 힘과 무관하기 때문인 거지.

원자를 한번 생각해봐. 이건 진짜 발견이고, 모든 과학 커리큘럼의 일부로 가르쳐야 하잖아. 하지만, 원자에 대한 지식은 효과적인 약물을 만들거나 더 나은 재료를 생산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는 없다는 거지. 제약 화학자나 재료 과학자에게는 터무니없게 들릴 수도 있지만, 디자인 서사를 다시 떠올려보면... 누군가의 행동이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과 인과 관계가 있다고 확신시키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거지.

디자인에는 통제라는 느낌이 있잖아. 왜냐하면 디자인은 우리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고, 그 지식을 문제 해결에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해주니까. 하지만 연구를 통해서 이렇게 분리해서 발견한 것과 실제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 사이에는 근본적인 단절이 있다는 거지. 현대 약물 발견이 점점 체계적이고 표적화된 접근 방식에 의존한다고 해서, 건강 결과를 결정론적인 방식으로 엔지니어링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잖아. 항상 다양한 부작용을 예상할 수밖에 없고.

진정한 검증은 오직 생존뿐이라는 거지. 두통을 없애주는 약이나 튼튼한 재료는 효과가 있잖아. 효능에 대한 이유는 필요 없어. 어떤 것이 옳다는 이유는 시험에서 살아남기 때문이라는 거지. 여기에는 필요한 모든 안전 예방 조치가 포함될 텐데, 왜냐하면 시험이 안전 기준을 충족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고. 만들어진 것의 성공에 적용되는 모든 이유는 대부분 사후에 추가되어 취해진 행동을 정당화하는 사후 서사일 뿐이라는 거지.

진정으로 알 가치가 있는 것은 1) 우리가 복잡한 것을 만들고 있다는 것, 그리고 2)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에 대한 기준을 충족한다는 것 뿐이라는 거지. 약물 발견의 경우, 이건 원자에 대한 인과적인 지식(원자에 대한 지식이 약물 설계로 이어진다는 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성이 달성되고 있음을 알리는 속성에 대한 지식, 그리고 만들어진 것이 효과가 있다는 증거를 필요로 한다는 거지.

우리가 솔루션을 만들려는 시도는 디자인이 아닌 순진한 시행착오에 기반해야 한다는 거야. 약물 발견은 책을 쓰는 것처럼 이루어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거지. 화학 물질이 순진하게 혼합되고 매칭될 때, 구조와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하잖아. 이게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신호라는 거지. 잠재적으로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화합물의 특정 구조적, 행동적 속성을 식별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이러한 속성은 특정 약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동일한 범주 내의 여러 약물에 공통된 메타적인 속성이라는 거지.

화합물의 물리적 외관에서 일관성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잖아. 색상, 질감, 형태 측면에서 순도와 안정성을 나타내는. 화합물의 용해도를 확인하면, 신체 내 흡수 및 분포에 중요한 물과 지질 기반 용매에 용해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고. 용해 속도를 관찰해서 잠재적인 생체 이용률을 파악할 수도 있고. 빛, 공기, 다양한 온도에 대한 강건성은 빠르게 분해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할 거고. 용량-반응 관계의 출현은 독성 및 효과의 측면을 나타낼 거고. 또 화합물이 특정 시스템이나 증상을 표적으로 삼고 있는지 확인할 수도 있고.

근데 있잖아, 여기서 화학 지식을 이용해서 이러한 속성을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약물에 설계하려는 유혹이 있다는 거지. 융점, 용해도, 안정성의 변동성을 최소화하는 특정하고 잘 정의된 구조의 분자를 설계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도 있고. 수성 및 지질 환경에서 용해도를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특정 작용기를 선택할 수도 있고. 용해 속도를 최적화하고 흡수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물질의 입자 크기와 형태를 제어할 수도 있고. 다양한 조건에서 분해에 대한 저항성을 부여하는 특정 화학 결합과 구조적 모티프를 선택할 수도 있고. 예측 가능한 용량-반응을 설정하기 위해서 구조-활성 관계(SAR)를 사용할 수도 있고. 또, 분자 상호 작용과 생물학적 표적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서 화합물이 원하는 표적과 상호 작용하도록 할 수도 있고.

이 모든 게 다 합리적인 노력처럼 들리잖아. 일관성, 용해도, 용해 속도, 조건에 대한 강건성, 용량-반응 관계 및 표적화 방법을 제어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이 실제로 존재하니까. 그렇다면 왜 그걸 사용하지 않겠어?

그건, 있잖아, 서사 구조에 따라서 글을 쓰면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 이유와 같은 거지. 물론, 에세이나 책은 나오겠지만, 지루하고 현학적일 거라고 예상할 수 있고. 솔루션의 내부 작동 방식이 조화롭게 작동하지 않을 거라는 거지. 약물 발견은 항상 현실이었지만, 업계에서 사용하는 디자인 서사는 허구가 많다는 거야. 약물 발견에서 디자인에 대한 의존은 솔루션을 제공하기보다는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속성은 우리가 만드는 시스템에 디자인해야 할 것이 아니라, 순진한 시행착오가 효과가 있는 것을 만들어낸 후에 알아차려야 할 것이라는 거지. 그래, 속성을 솔루션에 디자인하는 것은 가능하고, 실제로 원하는 속성을 얻을 수 있다는 거야. 약물은 일관성, 용해도 등을 갖게 되겠지. 하지만, 해결책을 간신히 가치 있게 만드는 다양한 부작용도 있을 거고.

제약은 단지 하나의 예일 뿐이야. 핵심은, 복잡한 솔루션을 만들려면, 속성을 인과적으로 연결되는 속성의 추가적인 파이프라인으로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순진한 행동이 효과가 있다는 신호로 사용해야 한다는 거지. 현실은, 특정 결과를 설계하는 것보다 시행착오의 성공적인 구현에 더 중점을 둠으로써 더 나은 치료법과 재료를 만들 수 있다는 거야.

하지만 더 나은 약물이나 재료를 만들기 위해서 원자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면, 원자에 대해서 배우는 걸 뭐하러 귀찮게 해? 왜냐하면 원자에 대해서 배우는 건 원자를 사용해서 더 나은 것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거지. 원자 연구는 특정 시스템이 스스로를 배열하고 행동하는 방식과 관련된 중요한 속성을 가르쳐준다는 거야.

지금까지 우리가 축적한 환원주의적 지식은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는 데 사용할 조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참된 속성을 가진 자연의 솔루션의 예로 봐야 한다는 거지. 그 속성에 대한 지식은 우리의 노력이 효과가 있는지 검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원자에 대한 지식이 어떻게 화학 분야 밖의 영역에서 매우 유용할 수 있는지 고려해보면... 원자 내에서 전자가 특정 에너지 준위를 차지한다는 지식은, 잘 정의된 상태가 신호 무결성을 낳는다는 점에서 강력한 디지털 통신 시스템에 유용한 패턴을 제시할 수도 있다는 거지. 원자 간의 약한 결합은 재료에 유연성을 제공하고, 유연성을 유지하면서 협업을 달성하는 더 나은 접근 방식을 제시할 수도 있고. 외부 전자가 원자 행동을 지시하는 방식은 고도로 연결된 시스템에서 효과적인 상호 작용 프로토콜의 신호일 수도 있고. 원자 격자에서 보이는 배열은 도시 계획에 더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고.

핵심은, 원자를 연구하는 것이 디자인을 통해서 더 큰 시스템에 인과적으로 연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거지. 원자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원자가 자연이 고수하는 보편적인 속성을 보여주기 때문이고, 다양한 규모의 유사한 시스템은 의심할 여지 없이 유사한 제약 조건 하에서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거지.

미래 세대에게 가르치는 지식에 관해서는 디자인 서사를 없애야 해. 교과서에 나오는 고립된 지식 조각은 현실 세계 솔루션을 만드는 경로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참된 속성을 보여주는 예시라는 거지. 이러한 속성에 대한 지식과 시행착오를 수용하고 경험적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자연스러운 인간 능력이 최고의 솔루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거지.

우리는 연금술을 해야 하는 것 같아.

오늘날 AI 연구와 엔지니어링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은, 그것이 진짜 과학보다는 연금술처럼 보인다는 거야. AI의 진보는 신중한 설계나 환원주의적 사고에서 큰 이점을 얻지 못하고. 그것은 더 많은 데이터를 추가하고, 문제에 더 많은 컴퓨팅 능력을 투입하고, 상대적으로 임시적인 방식으로 하이퍼파라미미터를 혼합하고 일치시킨 덕분에 발전해왔다는 거지. 전통적인 과학자와 통계학자들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제 독자들은 그러한 임시적이고 엉망진창인 작업이 정확히 AI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거라고 생각해. AI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진정한 복잡성에 접근하고 있고, 진정한 복잡성은 디자인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없다는 거지. 전통 과학의 허구적인 인과 관계 환원주의는 AI를 더 좋게 만들지 못하고.

오늘날 AI의 성공은 딥러닝이 전통 과학, 통계 및 규칙 기반 소프트웨어와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 방식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거야. 도시, 전력망, 시장과 마찬가지로 AI는 엔지니어의 신중한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거지. AI는 자연이 솔루션을 만드는 방법과 유사한 외부 프로세스를 통해서 필요한 내부를 달성한다는 거야.

하지만 늘 그렇듯이 디자인 서사가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노력에 다시 슬며시 들어온다는 거지. 오늘날 AI 엔지니어링이 진행되는 임시적인 방식은 너무 세련되지 않게 들린다는 거야. 요즘 연구자들은 신경망 아키텍처와 그 안에 있는 많은 부분을 설계하고 싶어 하잖아.

하지만 우리는 연금술을 해야 하는 것 같아. 우리는 임시적인 방식으로 사물을 혼합하고 일치시키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기다려야 한다는 거지. 이것은 사실 디자인의 허구 하에서 작동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격한 접근 방식이라는 거야. 알 수 없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고 가장하기보다는, 연금술적 접근 방식은 시스템 외부에 머물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기다리는 거지. 그것은 자연이 솔루션에 수렴하도록 내버려 둔다는 거야.

물론, 연금술은 금을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유는 어딘가에서 멈춰야 할 거야. 하지만 요점은, 외부로 나가서 자연이 수렴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비과학적이지 않다는 거지. 그러한 개념은 (바라건대) 죽어가는 패러다임에 갇힌 전통적인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허수아비라는 거지. 한 바퀴를 도는 것의 일부는 평범한 것을 귀중한 것으로 바꾸도록 우리 조상들을 강요했던 것과 똑같은 정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거지.

엄격함 재정의

과학과 공학에서 엄격한 것이 중요하잖아. 엄격함은 우리가 발견하고 구축하는 것에서 신뢰성과 타당성을 확립하는 방법이고. 그것은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내리려는 인간의 탐구가 타당한 결론을 도출하는 능력에 달려 있도록 보장한다는 거지. 우리는 미래의 작업이 조립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고 싶어 하잖아. 이 모든 것이 대중이 마땅히 받아야 할 신뢰와 신용을 제공한다는 거지. 대중은 우리가 생산하는 이론과 발명품에 의존하려고 하니까.

하지만 현재 엄격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한 인식은 점점 더 문제가 되고 있다는 거지. 과학자와 평신도 모두 어려운 기술을 높은 수준의 덜 정확한 기술보다 더 엄격하다고 본다는 거야. 수학 방정식으로 가득 찬 이론을 보면 단순한 단어와 다이어그램이 있는 이론보다 더 강력해 보이잖아. 공식 시스템 내에서 표현되는 정밀함은 사물을 훨씬 더 구체적으로 보이게 만들고. 하지만 이 정밀함에는 현재 패러다임에서 편리하게 무시되는 비용이 있다는 거지. 수학적 기호나 인과 관계 계산을 사용해서 우리의 발견을 정확하게 표현할 때,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맥락을 많이 잃게 된다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과적인 존재잖아.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을 세상에서 명확한 것에 고정해야 하고. 우리는 우리가 측정하고, 관찰하고, 경험하는 것을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현실적인 모델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나는 이미 이 책에서 복잡성 하에서 적절한 엄격함이 어떤 모습인지 자세히 설명했잖아. 그것은 인과 관계 이유보다는 영원한 속성에 기반한 전제를 가진 논리적 주장을 만드는 것이라는 거지.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인과 관계와 결정론에 대한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그래, 속성은 우리가 복잡한 것이 준수할 것으로 예상하는 제약 조건으로 작용하잖아. 우리는 복잡한 솔루션을 구축할 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추론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사용할 수 있고. 하지만 그것들은 일종의 연결 조직을 가지고 있잖아. 그것들은 관계가 없는 별개의 속성이 아니라는 거지.

책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책에는 설정에서 시작해서 점점 고조되는 어려움으로, 궁극적으로는 그 어려움에 대한 해결책으로 전환되는 서사 구조가 있잖아. 내가 주장했듯이 이 구조는 글쓰기를 시작하거나 안내하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되고, 글쓰기가 잘 진행되고 있다는 사후 신호로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거지. 서사 구조의 다른 부분은 좋은 글쓰기의 속성이지만, 이러한 속성들은 메타 인과 관계 연결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설정은 고조되는 긴장으로 이어지고, 긴장은 클라이맥스로 전환되고, 결국에는 해결로 흘러간다는 거지.

글쓰기의 서사 구조는 외부적, 메타 구조로 볼 수 있고, 그 부분은 인과적으로 연결된 속성으로 작용한다는 거지. 이는 우리의 지식 정의를 사물의 내부 원인에서 멀리, 외부로 이동시키면, 인간이 추론하는 데 사용하는 일종의 인과 관계와 결정론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환원주의적인 과학 및 공학 패러다임 때문에 발생했던 잘못된 구체성과는 대조적으로 적절하게 배치된 구체성이잖아. 인과 관계가 메타 수준에서 사용될 때, 그것은 우리가 구축하고 있는 것에 대해 추론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고. 메타 수준에 존재하는 것에는 구조와 이유가 있다는 거지. 이것은 복잡한 것의 창조에 대해 이야기할 때 훨씬 더 현실적인 엄격한 접근 방식을 가져온다는 거야.

인류는 엄격함을 우리가 만들고 싶어 하는 시스템 외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거지. 여기가 인간이 자각과 이성이 의존하는 직관적인 인과 관계와 결정론을 처음 접한 곳이고. 결정론적 시스템의 내부나 우리의 이론과 설명의 멋진 기호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남는 법을 배운 자연적으로 복잡한 세계에서 말이지. 아마도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진보가 최고의 형태로 우리가 시작했던 곳으로 우리를 더 가깝게 데려온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될 거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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