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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녕하세요, 여러분. 음... 오늘 무슨 얘기를 좀 해볼까 하다가, 예전에 제가 좀 힘들었을 때, 어... 그러니까, 위스콘신 북쪽, 진짜 작은 동네에서 십 대 시절을 보냈거든요. 그때 라디오에서 우연히 잭슨 브라운의 "Running on Empty"라는 노래를 들었는데, 그 노래가 진짜 제 고등학교 시절의 어떤... 송가 같은 게 됐어요.
뭔가, 딱히 외롭다거나 슬프다거나 불안하다고 말하는 건 아닌데, 그냥 텅 빈 채로, 색깔이 빠져나간 듯한 삶을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그런 느낌을 너무 잘 표현한 거예요. 가사가 "I don’t know where I’m running now, I’m just running on... Running on empty..." 이런 식인데, 아... 침대에 딱 누워서 그 노래를 듣는데, 세상에, 처음으로 누군가가 저를 알아주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때가 열여섯 살이었는데, 곧 운전도 배우게 될 거고, 겉으로는 복잡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서 모든 게 나름 잘 풀려가고 있었어요. 성적도 괜찮았고, 할아버지, 할머니랑도 잘 지냈고.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한 거예요. 좋은 날이든 나쁜 날이든,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가슴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압력은 엄청난데 속은 텅 비어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이게 우울증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 음... 그때는 아니었어요. 물론 나중에 우울증으로 고생하긴 했지만. 그냥 절망적으로 슬픈 건 아니었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지 않았고. 그냥 자동 조종 모드처럼, 계속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활동에 계속 저를 던져 넣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강박 같은 게 있었어요. 혼자 있을 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주하지 않으려고. 그런 불안한 공허함이 그 당시에는 평화로운 제 삶의 모든 부분을 다 가려버렸어요. 어렸을 때는 진짜... 혼란스러웠죠.
그때부터 시작해서, 어른이 돼서도 계속 그... 뭐라고 해야 할까, '무기력함'의 그림자가 저를 따라다녔어요. 그 느낌이 아니더라도, 다시 돌아올까 봐 두려웠죠. 결국 그래서 제가 사회학 교수가 됐고, 이 '텅 빈 채로 달리는' 경험이 뭔지, 다른 사람들도 그런 걸 느끼는지, 그걸 이해하려고 오랫동안 애썼어요.
그러다가... 한참 뒤에,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때, 아담 그랜트라는 조직 심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봤는데, 거기서 제가 몇 년 동안 조용히 연구해왔던 바로 그 단어를 묘사한 거예요. 기사 제목이 "There’s a Name for the Blah You’re Feeling: It’s Called Languishing." 였어요. 그러니까, 뭔가 멍하고 답답한 느낌, 그거 'Languishing'이라고 부른다는 거죠.
그 기사에 따르면, 처음에는 다들 겪는 흔한 증상인 줄 몰랐대요. 친구들은 집중하기 힘들다고 하고, 동료들은 백신 소식이 들려도 2021년에 대한 기대가 없다고 하고, 가족 중 한 명은 이미 뻔히 아는 영화를 밤늦게까지 보고 있고, 아침 6시에 벌떡 일어나던 사람이 7시까지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안 하고... 그랜트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나 슬픔, 외로움을 겪은 후에 무기력함을 느꼈대요. 뭔가 희미한 정신적인 피로감인데, 특히 무관심이 증상 중 하나이기 때문에 쉽게 간과할 수 있다는 거죠.
Languishing은 서서히, 눈에 띄지 않게 시작돼서, 어느 순간 갑자기 우리를 덮쳐버린대요. 간단한 질문,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이 갑자기 팝 퀴즈처럼 느껴지고, 사회적으로 용납될 만한 답변을 찾아 허둥지둥하게 되고, 정작 본인도 답을 모르는 거죠.
그 기사가 엄청나게 화제가 돼서, 그 해 뉴욕 타임스에서 가장 많이 읽힌 기사가 됐대요. 그러니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겪고 있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그런 어려움을 설명할 어휘가 절실히 필요했던 거죠. 유명인들도, 왕족들도 무기력함을 느낀다고 트윗을 올리고, 트레버 노아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쇼에서 자신의 무기력함 경험을 털어놓았는데, 2만 명의 관객이 숨소리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조용해졌대요.
혹시 여러분도 이 증상들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나요? 감정이 무뎌진 것 같고, 앞으로 다가올 행사나 기념일에 대한 기대감이 없고, 삶이 외부적인 힘에 의해 좌우되는 것 같고, 일이나 개인적인 일에서 자꾸 미루게 되고, '어차피 해봤자'라는 태도가 생기고, 점점 더 많은 것들이 irrelevant하고, superficial하고, boring하게 느껴지고, 뭔가 삶을 다시 채워줄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이 계속 들지만 그게 뭔지 모르겠고, 공동체나 더 큰 목적에서 동떨어진 느낌이 들고, 한때 의미를 줬던 일이 이제는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잦은 brain fog를 경험하고, 작은 좌절에도 쉽게 무너지고, 끊임없이 불안하고 뿌리 없는 느낌이 들고, 강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설득당하거나 휩쓸리고, 친구나 가족에게 연락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게 힘들고,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어렵고,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기 어렵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면, Languishing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요.
Languishing은 우울증과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어요. 우울증은 최소 2주 동안 매일 또는 거의 매일 지속적인 절망감이나 슬픔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거나, 잠을 너무 많이 자거나 너무 적게 자거나, 자살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그런 기준을 충족시키지 않으면서도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어요. 삶의 목적이 없어도 우울증 증상이 없을 수도 있는 거죠. Languishing을 겪는 사람들은 또한 삶의 통제력을 잃고, 미래에 대해 불확실하고,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경향이 더 크대요.
번아웃은 어떨까요? 밤 12시 1분에 마지막 이메일을 보내고, 갓난아이가 또 땡깡을 부리고, 데이팅 앱을 계속 swipe하다가 손가락이 robot처럼 느껴질 때 떠오르는 단어일 수도 있죠. 번아웃은 한 세대, 혹은 지구 전체의 prevailing mood를 capture할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정신 건강 상태가 아니라 업무량과 그걸 감당할 자원 사이의 불일치를 묘사하는 '직업적 현상'이에요. 이 두 가지 상태는 때때로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번아웃은 훨씬 더 좁은 의미를 가지고 있죠.
그렇긴 하지만, 번아웃은 우리를 너무 demoralize시켜서 무기력함이 자리 잡게 할 수도 있어요. 일 때문에 끊임없이 시달리면 한때 큰 만족감을 줬던 활동에서 기쁨이나 의미를 찾기가 어려워지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해야 할 일 목록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서 아이와 함께 있는 순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광고 캠페인이 공개되는 것을 보면서 느꼈던 excitement가 컴퓨터에 묶여 늦은 밤까지 반복적인 배너 디자인을 churn out할 때는 distant memory처럼 느껴질 수도 있죠.
우리 사회는 우리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을 지라"고 admonishing하는 것을 좋아해요. 행복하지 않다면, 더 일찍 일어나고, 운동을 더 많이 하고, 잠을 더 많이 자라고. 하지만 사회학자들은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기보다는 시스템이 어떻게 우리를 fail시키는지 이해하는 데 더 관심이 많아요. 우리가 기록적인 수준의 스트레스, 불안, 번아웃, 그리고 물론 무기력함을 느낀다면, 그게 어떻게 오로지 당신의 잘못일 수 있겠어요? 사실, 우리 자신을 위해 더 나은 삶을 만들고, 심지어 우리의 가치관과 identity에 맞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 agency를 빼앗는 것은 바로 시스템 자체인 경우가 너무나 많아요.
한 젊은 의사는 의료 시스템이 그와 그의 동료들에게 가하는 demands 때문에 그들의 professional values를 sacrifice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는 뉴욕 타임스에 자신의 직업에서 도덕적 붕괴라고밖에 묘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의견 기사를 썼는데, 병원들이 "수십억 달러의 현금 reserve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의적으로 인력 부족을 초래하고 환자 관리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어요.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된 arcane medical billing system은 환자를 위한 critical treatment choices를 내리는 담당자들에게 skewed incentive structure, 말할 것도 없이 administrative work를 만들어 내서 그들이 맹세한 치료 기준을 uphold하기 극도로 어렵게 만들어요. 의료 종사자들이 무기력감과 lost purpose를 mass numbers로 보고하는 것은 당연한 거죠. "우리의 demoralization은 의료 상태에 대한 reaction이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diseased systems에 대한 것이다"라고 그는 forceful하게 썼어요. 의술을 행하는 것은 practitioner들을 안에서부터 wearing down시키고 있는 거죠.
다른 직업에서도 비슷한 시나리오가 펼쳐지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인력이 부족하고 funding이 부족한 학교의 교사는 항상 자신의 직업과 학생들을 사랑했고, 학생들을 위해 extra mile을 go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런 종류의 work ethic은 사람을 only so long까지만 carry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weary detachment감을 느낄 수도 있어요. 이것은 그녀가 아니에요. 시스템의 failures가 그녀의 defenses를 worn down시킨 거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conditions 하에서 우리 자신의 self-narrative, 즉 우리 삶과 세상을 meaning out of make하기 위해 구성하는 이야기가 crumble하기 시작해요. 이런 weakened sense of self는 때때로 "feeling dead inside"라고 묘사되기도 해요. 우리는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받아들여질 뿐만 아니라 자신을 accept하고 highly regard할 psychological need가 깊게 자리 잡고 있어요. 우리가 mirror에서 보는 사람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vicious cycle이 어떻게 plays out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어쩌면 우리는 잘못된 질문을 해왔는지도 몰라요.
1990년대 후반에 저는 잠깐 동안 positive psychology movement의 launch에 참여했고, 심지어 1999년에 열린 positive psychology에 관한 첫 번째 summit을 cohosting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movement가 성장하면서 저는 그것이 다른 self-improvement philosophies처럼 feeling states, 즉 optimistic하게 느끼고, happy하게 느끼고, strongly하게 느끼는 데 지나치게 focus하는 것을 봤어요. 기분 좋은 감정이나 불쾌한 감정의 존재에 근거해서 우리의 well-being을 measuring하는 것을 멈추면 어떻게 될까요? 더 깊은 needs set을 meeting하는 데 우리의 energy를 directed하면 어떻게 될까요?
good mental health로 이어지는 conditions에 대한 제 research, 즉 제가 flourishing이라고 부르는 것은 psychological, relational, social functioning을 improving하는 것이 well-being을 ground up으로 build한다고 밝혔어요. 우리의 emotions를 더 loosely hold하고, 우리 자신에게 말하는 stories를 change하고,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더 accepting하게 되고, care와 belonging의 communities를 form하는 것은 virtuous cycle을 만들어서 스트레스, adversity, modern living의 pressures에 대한 tolerance를 증가시켜요.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functioning을 improving하는 것은 life satisfaction과 전반적인 emotional well-being에 대한 더 깊은 sense를 만들어요. 다시 말해서, 당신은 functioning을 well하기 때문에 good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No simple task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healthy functioning에 focus하는 것은 priorities의 shift를 require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의 두 번째 half에서는 당신 자신을 ground하고 recenter하고, flourishing의 building blocks로 돌아가기 위한 simple하지만 powerful한 practices set을 explore할 거예요.
몇 년 전에 저는 한 journal로부터 롬바르디 의료 종사자들의 mental health를 연구하고 있는 Italian colleagues가 submitted한 paper를 review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롬바르디는 Italy에서 코로나 팬데믹 초기 3개월 동안 발생한 거의 3만 명의 사망자 중 거의 half를 기록했어요.
당시 롬바르디의 의료 시스템과 의료진은 under siege 상태에 있었어요. researchers는 무기력함이 롬바르디의 frontline healthcare workers가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PTSD)로 diagnosed될 odds를 three 배로 늘린다는 것을 발견했고, 무기력함을 severely 겪는 사람들이 가장 at risk였어요. 하지만 그들은 또한 flourishing하는 workers가 무기력함을 moderately 겪는 사람들보다 PTSD에 걸릴 가능성이 almost four 배나 적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무기력함이 PTSD 발병과 같이 wide variety of risks에 당신을 more vulnerable하게 만든다면, flourishing은 이와 같은 문제와 다른 많은 문제에 대한 strong immunity를 build up해서 우리를 grind down시키고 너무 많은 것을 빼앗아가는 세상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resiliency를 당신에게 줘요.
확신이 더 필요하신가요? 아래 list를 읽으면서 각 line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frame해 보세요.
Flourishing은...으로부터 protect하고, Languishing은...에 당신을 vulnerable하게 만든다.
middle and high schoolers의 delinquent behaviors (흡연, inhalants 사용, 음주, skipping school 등)
suicide attempts와 suicidality (자살에 대한 serious thoughts를 planning하고 갖는 것)
suicide 이외의 self-harming behaviors (자신을 때리거나 자르는 것, 머리카락을 뽑는 것 등)
school을 quitting하고 싶어 하는 것
depression
anxiety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mental illness의 relapse (treatment 후 clinical recovery에 도달한 후 mental illness에 sliding back하는 것)
high-conflict 또는 very stressful work environment에서 working하는 것에서 오는 mental distress
reduced work productivity (work days를 missing하는 것)
frequent healthcare visits (physical and mental/emotional 이유로)
염증을 증가시키고 antibody production을 감소시키는 conserved transcriptional response to adversity(CTRA) genes set을 activating하는 것
premature death
이러한 findings은 제 decades of research에 근거하고 있어요. Languishing은 우리의 daily functioning을 impede하고 우리를 inflexible behaviors의 "loops"에 trapping할 뿐만 아니라 serious mental illness와 early mortality로 가는 gateway이기도 해요. 우리는 그 door를 open 상태로 leave할 여유가 없어요.
아무도 우리가 worrying하고 있는 mental health issues의 menu에 another problem을 add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팬데믹 기간 동안 viral moment 전후로 media는 대체로 languishing에 indifferent했고, 그것을 background 속으로 receding하게 내버려 뒀어요. 하지만 우리는 "real" mental health diagnoses와 "bigger problems"에 직면해서 languishing을 downplay하려는 temptation에 give in할 수 없어요. Languishing은 public health에 대한 serious threat를 poses해요.
Mental illness는 profound individual and societal burden이에요. 전체 population의 약 half가 자신의 lifetime 동안 그것을 experience할 거예요.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well-meaning하고 well-trained된 psychiatrists는 mental illness의 negative symptoms를 diagnosing하고 treating하는 데 focus해왔어요. 그리고 billions of dollars가 그 분야에 invested된 후에도 many leading medications은 physical exercise나 meditation보다 depression, anxiety, psychological distress의 symptoms를 treating하는 데 still less effective해요.
depression과 PTSD로 treatment를 받았고, 자살을 contemplated했고, psychiatric medications을 복용한 사람으로서 저는 mental health의 positive components를 studying하는 데 제 professional life를 dedicated해왔어요. flourishing에 대한 제 framework는 mental illness와 mental health가 related되어 있지만 distinct dimensions라는 것을 recognizes해요. Health는 단순히 disease의 absence가 아니에요. 그것은 또한 well-being의 presence이기도 해요. 그리고 medical field는 불안, PTSD, complex PTSD, ADHD, OCD 또는 기타 mental illnesses or disorders를 completely "curing"하지 않고도 삶에서 well functioning하는 법을 배우고 심지어 flourishing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너무 자주 overlooked해왔어요.
How is it possible하냐고 wonder할 수도 있겠죠, mentally ill하면서 mentally healthy할 수 있는지? 그것은 odd하게 들리고, almost impossible하게 들려요. Indeed, 무기력함은 mental illness로 treatment를 받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common해요. 하지만 schizophrenia와 같이 serious한 것으로 treatment를 받고 있는 patients들 사이에서도 flourishing은 can and does happen. 홍콩에서 schizophrenia를 앓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recent study는 환자의 28%가 out there에서 가장 difficult한 mental illnesses 중 하나와 battling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flourishing에 대한 criteria를 충족한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sample size가 작았고 모든 schizophrenics를 representative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 자신의 demons, large or small과 battling하고 있는 우리 나머지 사람들에게 꽤 good news예요.
저는 languishing하고 싶지 않고, definitely mental illness를 앓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꽤 sure 당신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가 must ask 질문은 우리의 end goal을 how to define해야 하는지, mental health를 assessing하는 데 어떤 metric을 use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how can get there해야 하는지, 즉 어떤 methods가 most effective한지예요.
제가 years 동안 제 work를 세상과 share해 오면서 flourishing은 저를 find하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저녁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저는 제 work에 대한 public presentation을 했어요. 한 group이 afterward chat하기 위해 저에게 왔는데, excitement으로 thrumming하고 있었어요. 그들은 자신들이 Mad Pride movement의 part라고 proclaimed했는데, 이 group은 mental illness로부터 "full" recovery라고 부르는 것을 advocating하는 lived experience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들은 단순히 자신의 illness로부터 free하고 싶어 하지도 않고, 그것에 의해 defined되거나 그것에 의해 stigmatized되고 싶어 하지도 않아요.
"This flourishing thing은 some people에게 new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nothing new이다." 몇 seconds 동안 제 안의 academic은 약간 put out하게 느꼈어요. 그러다가 저는 recovery vision에서 aligned되는 것이 얼마나 exciting하고 profoundly significant한지 깨달았어요. 즉, belonging하고, contribute하고, purpose를 가지고, 우리의 ideas와 opinions를 express하고, accepted되고 우리 자신을 accept하는 거죠. Pride감이 저를 wash over했어요. 저 또한 Mad Pride의 living proof였던 거예요.
우리 중 많은 사람들에게 extremely challenging한 condition을 manage하기 위한 우리의 best efforts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time periods 동안 background 속으로 receding될 possibility에도 불구하고 mental illness는 어떤 form으로, 종종 manageable한 form으로 우리의 lives through을 remain할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vocabulary를 expand할 수 있고, 그것과 함께 우리의 potential을 expand할 수 있어요. 우리는 healthy functioning levels과 누구든지 virtuous cycle of flourishing을 create하기 위해 take할 수 있는 positive steps에 focus할 수 있어요.
Positive mental health의 scale에서 당신이 어디에 fall하는지 curious할 수도 있어요. coming pages에서는 제가 developed한 fourteen-point questionnaire를 보게 될 텐데, 이 questionnaire는 decades 동안 clinicians에 의해 well-being을 assessing하는 holistic하고 reliable means로 used되어 왔어요. (만약 그 particular mirror를 자신의 face에 holding up하기 전에 이 책의 end까지 기다리고 싶다면, feel free to skip 이 assessment를 for now.)
Each of the questions은 well-being의 important하고 fundamental한 facet을 probes해요. 첫 번째 three는 emotional well-being을 evaluate하고, 다음 five는 social well-being을 test하고, 마지막 six는 psychological well-being을 measure해요. 보다시피 우리는 flourishing에 대한 criteria를 meeting하기 위해 contentment으로 glowing하면서 삶을 walking through하면서 all figured out할 필요가 없고, well-being의 some components는 다른 components보다 more weight를 carry해요.
다음 questions에 answering하기 전에 지난 month 동안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Think해 보세요.
당신의 goal은 every single day every box를 check하는 것이어서는 안 돼요. 당신은 flourishing하기 위해 emotional well-being의 three facets 중 하나와 함께 social or psychological well-being의 eleven functioning well 중 six만 필요해요, almost every day. combinations은 almost endless하므로 당신은 자신의 unique way로 flourishing할 수 있어요.
만약 당신이 flourishing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이 어느 정도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Some people은 무기력함을 severely 느끼고, some은 무기력함을 only moderately 느껴요. 만약 당신이 more 0와 1을 circled했다면 당신은 무기력함을 severely 느끼고 있을 수도 있고, 만약 당신이 more 2와 3을 circled했다면 당신의 무기력함은 probably moderate할 거예요.
하지만 제가 remind해 드릴게요. Wherever 당신이 today 있든지 그것은 당신이 그곳에 stay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아요.
자, 어쨌든... 제가 이 책을 쓰려고 앉아 있었던 지난여름에, 새로운 teenage anthem이 take over했어요. Em Beihold의 "Numb Little Bug"는 sensation이었고, 제가 처음으로 그것을 들었을 때, 오늘날의 teenagers가 침대에 누워서 자신이 seen하다고 느끼고, 마치 mirror가 그들의 faces에 holding up되고 있는 것처럼 상상하는 것을 help할 수 없었어요. 무기력함과 accompanying되는 invisibility에 대한 가장 haunting reference는 "Like your body’s in the room but you’re not really there"라는 line에서 왔어요.
song throughout, Beihold는 다른 누군가가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느끼는지, "Like you’re not really happy but you don’t wanna die"라고 ask해요. Yes, Em, 우리는 그래요. 우리 중 so many는 그래요.
Naming하는 것은 어떤 것에 power를 주고, 우리에게 그것에 대한 power를 줘요. 우리는 painful experience를 fully recognize할 수 있기 전에, 훨씬 less validate in our suffering할 수 있기 전에 language를 use해야 해요. 하지만 우리는 healing으로 move하기 위해 word 이상의 것을 need해요. 우리는 languishing의 psychology와 underlying causes를 understand해야 해요. 이 책의 첫 번째 half는 왜 우리가 languishing하고 있는지, 그것이 individually and as a society 우리에게 how it’s impacting하는지 understand하는 데 help할 거예요.
우리는 팬데믹이 이미 set into motion되었던 social and economic issues를 fast-forward했다고 계속 hearing하고 있고, 그것은 true예요. Harvard University historian Niall Ferguson이 early 2023년에 The Washington Post에 쓴 piece에서 쓴 것처럼 "real-world social networks의 abrupt closure가 gregarious species of naked apes의 mental health에 detrimental하지 않았다면 astonishing했을 것이다." 그 all-too-difficult pandemic years 동안 billions of people이 서로로부터 retreat해서 자신의 lives의 woodwork 속으로 disappearing했어요. mass loneliness, uncertainty, fear, grief, and sleep deprivation의 state 속으로 plunged되는 것은 우리나라와 세상에 sharp psychological toll을 take했어요.
Globally, emotional distress는 on the rise에 있고, socioeconomically disadvantaged communities와 between the ages of fifteen and thirty-five인 people이 hardest hit되어 왔어요. "persistent feelings of sadness or hopelessness"를 보고하는 high school girls의 number는 2011년 이후 36% 증가한 2021년에 57%로 rise했어요. 그리고 trouble 속에 있는 것은 teenage girls뿐만이 아니에요. 2021년에 a record number of adults가 previous day에 "a lot of stress"(41%)와 "a lot of worry"(42%)를 experience했다고 보고했어요.
팬데믹은 우리의 mental and emotional distress를 magnified했지만, 우리는 꽤 some time 동안 이 path를 traveling down해왔어요. 만약 우리가 languishing을 promote하기 위해 built된 modern world를 set up할 계획을 실제로 have했더라면, 우리는 possibly better job을 done할 수 없었을 거예요. 우리 중 Many는 richer하고 more meaningful lives에 hungry해요.
우리 중 Many는 우리의 lives가 matter하다고 느끼는 데 hungry해요. 우리는 belonging하는 데 hungry해요. 우리는 warmer하고 more trusting한 relationships에 hungry해요. 우리는 who we are인 것에 대해 우리를 accept하는 society에 live하는 데 hungry해요. 우리가 hungry to receive하는 everything은 동일한 things에 hungry한 others로부터 와야 해요. How can a society of hungry people이 서로에게 they need하는 것을 feed할 수 있을까요?
Part II가 그 질문을 take up해요. 저는 different ages, races, ethnicities, income levels, schedules, and personality types across 사람들의 stories에 drawing해서 flourishing으로 가는 path를 map out할 건데, 이 사람들은 long-established ruts에서 broke out했어요. demographics across and mental health diagnoses regardless하고, 동일한 five practices가 renewed sense of meaning, connection, and personal growth를 instill해요, even if 당신이 minutes of 당신의 day, or week, for them을 carve out할 수 있을 뿐이더라도요.
Flourishing은 alternative form of medicine으로 acts해요. 만약 당신이 anemia로 diagnosed된 적이 있다면, 그것은 bloodstream에서 low iron level을 having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당신은 그것이 당신을 weak, sluggish, tired하게 느끼게 만든다는 것을 알 거예요, kind of like languishing의 physical equivalent처럼요. 당신이 iron supplements로 anemia를 treat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당신은 제가 The Five Vitamins of Flourishing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languishing을 treat할 수 있어요.
The best part는요? The research는 good mental health의 spectrum에서 any movement가 value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요. 만약 severe languishing이 1이고 flourishing이 10이라면 당신은 이 책의 last page를 turn하기 전에 how to get from 1 to 10을 figure out할 필요가 없어요. someone’s life, health, and ability to functioning의 every indicator는 그들이 lowest level에서 languishing하고 있을 때 markedly worse해요. flourishing으로 moving하는 것은, no matter how incremental the movement이든, 당신의 life에 profound effect를 have할 수 있어요.
Now let’s go figure out 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