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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culating...

아, 그러니까, 아모스가 1966년에 이스라엘로 돌아왔을 때, 벌써 고향 떠난 지 5년이나 된 거야. 예전 친구들은 당연히 지금 아모스랑 자기들 기억 속의 그 아모스를 비교해 보겠지? 몇 가지 달라진 점을 발견했을 거야. 미국에서 돌아온 아모스는 일에 대한 태도가 좀 더 진지해진 것 같고, 행동거지에도 뭔가 프로페셔널한 느낌이랄까? 이제 히브리대학교 조교거든, 자기 사무실도 있고. 근데 그 사무실을 거의 비워둔다는 건 뭐, 공공연한 사실이었지. 책상 위에는 샤프 펜슬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어쩌다 아모스가 사무실에 나타나면 지우개 하나랑 자기가 그때 하고 있는 프로젝트 자료들이 딱 정렬돼서 놓여있는 정도? 옛날에 미국 갈 때는 정장 같은 거 입어본 적도 없었거든. 그래서 히브리대학교에 옅은 파란색 정장을 입고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진짜 깜짝 놀랐대. 색깔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아비샤 마갈릿이 그랬대. “상상도 못 할 일이었어. 그런 옷차림은 아무도 안 했거든. 넥타이는 자본주의의 상징이었지. 우리 아빠가 처음 정장 입고 넥타이 매고 나타났을 때, 마치 아빠가 딴 여자랑 바람피우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 뭐, 그렇다고. 그런데 또 다른 면에서는 아모스는 변하지 않았어. 여전히 밤에 쌩쌩하고, 파티에서 제일 인기 많고, 주변 사람들이 막 몰려드는 그런 사람이었지. 여전히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았어. 정장을 입게 된 것도 자본가처럼 보이려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남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어서였대. 정장 고르는 기준도 딱 두 가지였어. 주머니가 몇 개인지, 그리고 주머니 크기가 어떤지. 주머니에 꽂히기도 했지만, 서류 가방에도 거의 집착하다시피 해서 엄청 많이 샀대. 수십 개는 될걸? 5년 동안 세계에서 제일 물질적인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 살다 왔으니까, 이제는 물질적인 걸로 자기만의 규칙을 만들고 싶었던 거지.

정장이랑 같이 데려온 게 또 있어. 바로 아내였지. 3년 전에 미시간대학교에서 심리학과 동기였던 바바라 간스를 만났대. 1년 뒤에 데이트를 시작했고. 바바라가 그랬대. “아모스가 혼자 이스라엘로 돌아가기 싫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결혼했어.” 바바라는 미국 중서부에서 나고 자라서 외국에는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었대. 유럽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을 막 편하고 격식 없다고 평가하잖아? 근데 바바라 생각에는 그게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들한테 더 잘 맞는 말 같았대. "만약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무줄이랑 테이프밖에 없으면, 그걸로 어떻게든 고정시키려고 할 거야." 라고. 이스라엘은 물질적으로는 부족했지만, 다른 면에서는 풍족하다고 생각했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적어도 유대인들은, 다 비슷하게 벌고, 다 먹고 살 만하게 사는 것 같았거든.

뭐, 사치품 같은 건 거의 없었어. 아모스랑 바바라한테도 전화가 없었고, 차도 없었고,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그랬지. 가게들도 다 작고, 전문점들이 많았대. 어디는 틀을 팔고, 어디는 돌 자르는 기계를 팔고, 또 어디는 팔라펠을 팔고. 만약에 목수나 페인트공을 찾고 싶으면, 전화로 예약하는 건 꿈도 못 꿨대. 전화가 있는 집도 별로 없었지만, 있어도 전화를 안 받거든. 그냥 오후에 시장에 직접 가서 혹시 만날 수 있을까 하고 기다려야 했대.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 했어. 모든 게 다 그랬지. 집이 불타면, 사람들이 뛰쳐나와서 길에서 만난 친구한테 소방서 아는 사람 있냐고 물어보는 그런 농담도 있었어." 그땐 TV도 없었고, 라디오는 흔했어. 그래서 BBC 방송이 라디오에서 나오면, 다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대. 뭔가 긴박한 느낌이 들었거든. "다들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어." 바바라가 그랬어. 그 긴장감은 미국이 베트남에 전쟁을 선포했을 때랑은 완전히 달랐대. 이스라엘에서는 위험에 대한 감각이 항상 현재진행형이고, 개인적인 문제로 느껴졌거든. 바바라가 그랬대. "만약에 국경선 어디에서든 아랍 사람들이 싸움을 멈추면, 몇 시간 안에 쳐들어와서 사람들을 죽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바바라는 히브리대학교에서 심리학 강의를 맡게 됐어. 근데 그 대학교 학생들은 교수들한테 시비 거는 걸 자기 임무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대. 엄청 공격적이고, 어른을 공경하는 모습도 없고, 진짜 심각할 정도였대. 미국에서 온 어떤 방문 교수가 강연을 했는데, 어떤 학생이 막 중간에 끼어들어서 자기 생각을 막 쏟아내는 바람에 교수가 엄청 당황했대. 그래서 학교 측에서 그 학생한테 직접 가서 사과하라고 명령했대. 학생이 그 교수한테 가서 그랬대. "감정을 상하게 해서 죄송해요. 근데 교수님, 진짜 강의 너무 별로였어요!" 학부생들 심리학 기말 시험 문제 중 하나가 이미 발표된 논문을 주고 "문제점을 찾아내시오" 였대. 바바라가 부임한 지 하루 만에 강의 시작한 지 10분 만에 뒤에 앉아있던 학생이 갑자기 소리쳤대. "교수님, 틀렸어요!" 다른 학생들은 뭐, 익숙한 듯 별 반응도 없었고. 히브리대학교에서 엄청 유명한 교수가 "통계학에 속하지 않는 것" 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는데, 어떤 학생이 엄청 큰 소리로 외쳤대. "저 사람은 '통계학에 속하지 않는 사람' 목록에 확실히 들어가겠네요!"

그래도 이스라엘에서는 교수를 엄청 중요하게 생각했대. 이스라엘 지식인들은 국가 발전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여겨졌고, 지식인들도 적어도 겉으로는 국가의 기둥처럼 행동했대. 미시간대학교에 있을 때는 바바라랑 아모스는 완전히 대학교 안에만 살면서 학자들하고만 교류했거든. 근데 이스라엘에 오니까 정치인, 장군, 기자, 그리고 국가 운영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까지, 진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대. 처음 몇 달 동안은 아모스가 이스라엘 육군이랑 공군 장군들한테 의사 결정에 대한 최신 연구 결과들을 막 설명해줬대. 솔직히 말해서, 그 이론들이 실질적으로 쓸모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학문 연구에 관심을 갖는 정부 관계자들은 본 적이 없어." 바바라가 미시간에 있는 가족들한테 편지를 썼대.

그러니까, 당연히 모든 사람이 군대에 가야 했어. 교수도 예외는 아니었지. 아무리 순수한 지식인이라도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거든. 모든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권력자들의 명령에 따라야 했어. 바바라는 이스라엘에 온 지 6개월쯤 지나서야 그걸 제대로 실감했대. 1967년 5월 22일,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가 티란 해협을 봉쇄한다고 발표했어. 이스라엘 배는 못 지나간다는 거지. 티란 해협은 이스라엘 해상 운송에 엄청 중요한 곳이었거든. 그러니까 이집트가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뜻이랑 똑같았지. 바바라가 그랬대. "어느 날 아모스가 집에 와서 '군대에서 곧 나를 데리러 올 거야' 라고 말했어." 그러더니 막 짐을 뒤져서 옛날에 공수부대에서 입었던 군복을 찾아냈는데, 아직도 입을 수 있었대. 그날 밤 10시에 군인들이 와서 아모스를 데리고 갔대.

아모스가 비행기에서 뛰어내린 지 벌써 5년이나 됐네. 이번에는 보병 부대 지휘관을 맡았대. 온 나라가 전쟁 준비를 하면서도 전쟁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려고 애썼지. 예루살렘에서는 독립 전쟁 때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 사람들이 또다시 도시가 포위될까 봐 걱정해서 가게에 있는 통조림을 싹쓸이해 갔대. 전쟁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어. 이집트랑만 싸우면 힘들겠지만, 그래도 나라가 망하지는 않을 거고, 아랍 연합군이랑 싸우면 진짜 큰일 날 수도 있었지. 이스라엘 정부는 몰래 공원 같은 데를 대규모 공동묘지로 쓸 준비를 하고 있었대. 온 국민이 동원됐어. 자가용이 버스 대신 쓰였어. 왜냐하면 버스들은 전부 군대에서 징발해 갔거든. 초중고 학생들은 신문이랑 우유를 배달하는 일을 맡았고. 군대에 갈 수 없는 이스라엘 아랍 사람들은 전쟁터에 나간 유대인들이 하던 일을 대신했대. 그때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이 마치 하늘의 뜻인 것처럼 계속 불어왔대. 바바라는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 물을 아무리 마셔도 목이 마르고, 아무리 젖은 옷도 30분이면 다 말라 버렸대. 기온은 35도까지 올라갔는데, 바람 때문에 더운 줄도 몰랐대. 바바라는 예루살렘 외곽, 국경 근처에 있는 키부츠에 가서 참호를 파는 일을 도왔대. 자원봉사자들 책임자는 40대 남자였는데, 독립 전쟁 때 다리를 잃어서 의족을 하고 있었대. 시인이기도 했는데, 다리를 절면서도 시를 막 생각하고 그랬대.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아모스는 집에 두 번 왔었어. 샤워하기 전에 우지 기관총을 침대에 툭 던져놓는 모습을 보면서 바바라는 진짜 놀랐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거야! 온 나라가 전쟁 때문에 난리인데, 아모스는 전혀 동요하지 않는 것 같았대. "아무 걱정할 필요 없어. 모든 건 공군력에 달려 있어. 그게 우리 강점이잖아. 우리 공군이 적군 비행기를 싹 다 부숴버릴 거야." 라고 말했대. 6월 5일 아침, 이집트 군대가 이스라엘 국경으로 막 쳐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이스라엘 공군이 기습 공격을 감행했대. 몇 시간 만에 이스라엘 조종사들이 적군 비행기 400대 정도를 격추시켰대. 거의 이집트 공군 전체를 날려버린 거지.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 군대가 엄청난 속도로 시나이 반도로 진격했대. 6월 7일, 이스라엘은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세 나라와 동시에 싸우기 시작했대. 바바라는 예루살렘 시내 방공호에 숨어서 모래 주머니를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대.

나중에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랑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창시자 아흐마드 슈케이리가 만났대. 나세르가 전쟁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전부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자고 하니까, 슈케이리가 그럴 필요 없다고 했대. 왜냐하면 살아남을 유대인은 아무도 없을 거니까. 전투는 월요일에 시작됐고, 토요일에 라디오에서 전쟁이 끝났다고 발표했대. 이스라엘이 압도적으로 이겨버린 거야. 유대인들은 이게 현대전쟁이 아니라 그냥 성경에 나오는 기적 같은 이야기 같다고 생각했대. 며칠 만에 나라 크기가 두 배로 커지고, 예루살렘 구시가지랑 모든 성지를 차지하게 됐거든. 일주일 전에는 뉴저지 주 정도 크기밖에 안 됐는데, 이제는 텍사스 주보다 커지고, 국경선도 엄청 튼튼해진 거지. 라디오에서는 더 이상 전쟁 소식은 안 나오고, 대신 예루살렘을 찬양하는 신나는 노래들이 계속 흘러나왔대. 여기서 또 이스라엘이랑 미국의 차이가 드러나는 거야. 여기서는 전쟁이 빨리 끝나고, 항상 이긴다는 거지.

목요일에 바바라는 아모스 부대에 있던 어떤 군인한테 아모스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대. 금요일에는 아모스가 군용 지프차를 몰고 누런색 건물로 와서 바바라를 데리고 갔대. 그들은 막 점령한 서안 지구를 함께 여행했대. 가는 길에 진짜 이상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들을 많이 봤대. 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아랍 상인들이랑 유대인 상인들이 다시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 1948년 1차 중동 전쟁 이후로 처음 만나는 거였거든. 아랍 사람들이 손을 잡고 옛날에 유대인들이 살았던 루핑 거리에서 걸어가다가 신호등 앞에서 멈춰서 신나게 박수를 치는 모습도 봤대. 서안 지구에서는 불에 탄 요르단 탱크랑 지프차가 엄청 많이 쌓여있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신나게 놀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버리고 간 텅 빈 참치 통조림 깡통들도 많이 봤대.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서쪽으로 갔는데, 거기에는 요르단 국왕 후세인이 짓다 만 궁전이 있었대. 아모스랑 수백 명의 군인들이 거기 주둔하고 있었거든. "그 궁전은 진짜 웃겼어." 바바라가 그날 밤 미시간에 있는 가족들한테 편지를 썼대. "아랍 스타일이랑 미시간 해안 스타일에서 제일 촌스러운 것들만 섞어놓은 것 같았어."

그리고 장례식이 계속 이어졌대. "오늘 아침 뉴스에 사망자가 679명, 부상자가 2563명이라고 나왔어." 바바라가 편지에 썼대. "사상자 숫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나라가 작아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는 사람 중에 죽거나 다친 사람이 있대." 아모스 부대원 한 명이 아모스가 이끄는 부대가 베들레헴 산에 있는 수도원을 공격할 때 죽었대. 또 다른 전장에서는 아모스의 어릴 적 친구가 저격수한테 맞아 죽었대. 히브리대학교 교수들도 몇 명 죽거나 다쳤고. "나는 베트남 전쟁 시대에 자랐지만, 내 주변에는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사람도 없었고, 죽은 사람은 더더욱 없었어." 바바라가 그랬대. "근데 여기서는 6일밖에 안 되는 전쟁에서 내가 아는 사람 4명이나 죽었어. 내가 여기 온 지 6개월밖에 안 됐는데."

전쟁이 끝나고 거의 일주일 동안 아모스는 후세인 국왕 궁전에 주둔했대. 임시로 여리고 시 군정 장관을 맡았대. 히브리대학교는 전쟁 포로들을 가두는 데 쓰였고. 하지만 대학교는 6월 26일에 다시 문을 열었대. 막 전쟁터에서 돌아온 교수들이 평소처럼 수업을 진행할 수 있기를 바랐거든. 암논 라포포트도 그중 한 명이었어. 아모스랑 같이 미국에서 돌아와서 히브리대학교 심리학과에 들어갔고, 아모스랑 제일 친한 친구가 됐지. 아모스가 보병으로 전쟁터에 나갈 때, 암논은 탱크를 타고 요르단으로 쳐들어갔대. 암논이 속한 탱크 부대가 제일 먼저 요르단 군대 방어선을 뚫었거든. 암논은 전쟁을 잠깐 겪고 돌아온 후에도 오랫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대. "내 말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나는 젊은 조교일 뿐인데. 갑자기 나를 뽑아서 24시간도 안 돼서 살인마, 살인 기계로 만들어 버린 거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몇 달 동안 악몽을 꿨어. 아모스랑 나는 교수랑 살인마라는 두 가지 역할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 막 고민했지."

암논이랑 아모스는 서로 도와가면서 인간의 의사 결정에 대한 비밀을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모스의 뿌리는 이스라엘에 있었고, 암논은 또다시 떠나고 싶어했대. 그를 떠나고 싶게 만든 건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뿐만이 아니었어. 아모스랑 같이 일하는 게 더 이상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거든. "연구할 때, 아모스는 너무 주도적이었어." 암논이 그랬대. "나는 평생 아모스 그림자로 살고 싶지 않았어." 1968년, 암논은 미국으로 돌아가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교수가 됐고, 아모스만 혼자 남아서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대.

1967년 초, 21살이었던 아비샤 헤니크는 골란 고원에 있는 키부츠에서 일하고 있었대. 가끔 시리아 쪽에서 총 쏘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신경도 안 썼대. 막 군대 제대했고, 대학교에 가려고 준비 중이었거든. 고등학교 때는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1967년 5월, 무슨 과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군대에서 또다시 소집 명령이 내려왔대. 아비샤는 다시 군대에 가면 전쟁에 나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 그는 150명 정도 되는 공수부대에 들어갔는데,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대.

10일 뒤에 전투가 시작됐대. 아비샤는 전쟁터에 나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처음에는 지휘관이 아비샤랑 다른 공수부대원들을 시나이 반도로 보내서 이집트 사람들이랑 싸우게 하려고 했대. 그러다가 갑자기 계획을 바꿔서 아비샤를 비롯한 사람들을 버스에 태워서 예루살렘으로 보냈대. 새로 만들어진 제2전선에서 요르단 사람들이랑 싸우라는 거지. 예루살렘 구시가지 밖에 있는 참호에는 요르단 군대를 공격할 수 있는 공격 지점이 두 개 있었대. 아비샤가 속한 부대는 총 한 발 쏘지 않고 요르단 방어선을 지나서 안으로 들어갔대. "요르단 사람들은 우리가 온 줄도 몰랐어." 아비샤가 그랬대. 몇 시간 뒤에 뒤따라오던 두 번째 이스라엘 공수부대는 요르단 군대 공격에 싹 다 죽었대. 아마 아비샤 부대가 운을 다 써버린 것 같았대. 방어선을 뚫고 나서 부대는 구시가지 성벽으로 향했대. "바로 그때, 총을 쏘기 시작했어." 아비샤는 바로 옆에서 같이 뛰어가던 사람이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됐대. 이름은 모세였는데, 만난 지 며칠 안 됐지만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대. 총알이 모세 몸을 관통했고, 그는 쓰러졌대. "1분도 안 돼서 죽었어." 아비샤는 계속 뛰어가면서 자기도 모세처럼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대. "너무 무서웠어." 아비샤가 그랬대. "진짜 공포를 느꼈지." 그가 속한 부대는 구시가지로 진격했고, 가는 길에 또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총에 맞아서 죽었대. "누군가 여기서 쓰러지고, 또 누군가 저기서 쓰러지고." 아비샤는 모세의 얼굴, 예루살렘 시장이 하얀 깃발을 흔들면서 통곡의 벽 옆에 서 있던 모습, 그런 장면들을 떠올렸대. 마지막 장면이 제일 믿기지 않았대. "너무 놀랐어. 사진으로만 보던 통곡의 벽을 내가 직접 보다니." 그는 지휘관한테 너무 기쁘다고 말했고, 지휘관은 "아비샤, 내일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면 기분이 싹 사라질 거야." 라고 대답했대. 아비샤는 전화기를 찾아서 엄마한테 "살아있어." 라고 한마디만 했대.

6일 전쟁은 아비샤한테 끝이 아니었대.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점령하고 나서 그랑 공수부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골란 고원으로 보내져서 시리아 사람들이랑 싸우게 됐대. 가는 길에 어떤 중년 여성을 만났는데, 그 여성이 "혹시 공수부대인가요? 혹시 내 아들 모세를 본 사람 있나요?" 라고 물었대. 아무도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대. 골란 고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이번 임무가 뭔지 알게 됐대.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서 뛰어내린 다음에 참호에 있는 시리아 군대를 공격하라는 거였대. 그 말을 듣고 아비샤는 자기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대. "내 생각에는 예루살렘에서 안 죽었으면 골란 고원에서 죽을 거라고 생각했어. 운이 계속 좋을 수는 없잖아." 지휘관이 아비샤한테 시리아 사람들이 있는 참호 안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을 내렸대. 그러니까 아비샤가 제일 앞에서 뛰어가다가 총에 맞거나 시리아 군대를 다 죽여야 한다는 거지.

그런데 출발하기 바로 전날 아침, 이스라엘 정부가 그날 오후 6시 30분에 휴전한다고 발표했대. 아비샤는 잠깐 살아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대. 하지만 지휘관은 공격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대. 아비샤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용기를 내서 전쟁이 끝나가는데 왜 가야 하냐고 물어봤대. "지휘관이 '아비샤, 너는 너무 순진하구나. 정말 휴전한다고 해서 골란 고원을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라고 말하더라고. 그래서 나는 '알겠습니다. 그럼 가서 죽겠습니다.' 라고 말했어." 공수부대원들은 헬리콥터를 타고 골란 고원으로 가서 아비샤가 제일 먼저 시리아 사람들이 있는 참호 안으로 뛰어들었대. 그런데 시리아 사람들은 이미 다 도망가고 아무도 없었대.

전쟁이 끝나고 22살이 된 아비샤는 드디어 자기가 뭘 공부해야 할지 결정했대. 심리학을 공부해야겠다고. 왜 심리학을 선택했냐고 물어보면, "사람의 영혼을 알고 싶어서요. 생각이 아니라, 영혼을요." 라고 대답할 거래. 히브리대학교에는 떨어져서 텔아비브 남쪽에 새로 생긴 네게브 대학교에 갔대. 대학교는 베르셰바에 있었고. 거기서 다니엘 카네만이라는 교수가 가르치는 수업을 두 개 들었대. 그 교수는 히브리대학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월급이 너무 적어서 네게브 대학교에서 겸임 교수로 일하고 있었대. 첫 번째 수업은 통계학 입문이었는데, 원래는 지루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대. "수업이 너무 재밌었고, 예시도 다 현실에서 가져온 것들이었어." 아비샤가 회상했대. "통계학뿐만 아니라 통계학 뒤에 숨겨진 의미가 뭔지도 가르쳐줬지."

그때 다니엘은 이스라엘 공군에서 전투기 조종사 훈련을 돕고 있었대. 그는 조종사들을 가르치는 교관들이 칭찬보다 비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됐대. 교관들은 조종사들이 제대로 했을 때 칭찬을 받거나 잘못했을 때 비판을 받은 후에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대. 칭찬을 받은 조종사는 다음에 꼭 못했고, 비판을 받은 조종사는 다음에 꼭 더 잘했대. 조금만 살펴보니 다니엘은 그 이유가 뭔지 알게 됐대. 칭찬을 받든 비판을 받든, 조종사들은 그냥 평균으로 돌아가고 있을 뿐이었거든. 교관들이 아무 말도 안 해도 조종사들 실력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 거였어. 교관들은 비판이 칭찬보다 더 효과가 좋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지. 통계학은 그냥 숫자만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깊은 통찰력을 담고 있었대. 다니엘은 나중에 이렇게 썼대. "우리는 사람들이 잘하면 칭찬하고, 못하면 비판하기 쉬운데, 사람들은 항상 평균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칭찬하면 실력이 떨어지고, 비판하면 실력이 향상되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다니엘이 가르친 또 다른 수업은 감각에 대한 거였는데, 각종 감각들이 어떻게 인지되고, 어떻게 잘못 인지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대. "솔직히 말해서, 두 번 수업 듣고 나서 이 사람이 진짜 천재라는 걸 알게 됐어." 아비샤가 그랬대. 다니엘은 유대교 율법에서 랍비들이 묘사한 낮이 밤으로 변하고, 밤이 낮으로 변하는 장면들을 막 외우고, 학생들한테 랍비들이 뭘 봤을 것 같냐고 물어봤대.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냐고. 그러더니 푸르키네 효과에 대해서 설명해줬대. 19세기 초 체코 심리학자 푸르키네 이름을 딴 건데, 사람 눈이 낮에 제일 밝게 보는 색깔이 저녁에는 제일 어둡게 보인다는 거였대. 그러니까 랍비들이 아침에 선명하게 보던 빨간색이 저녁에는 엄청 어둡게 보일 수도 있었겠지. 다니엘 머릿속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뿐만 아니라, 엄청 신기한 팁들이 많이 들어있는 것 같았대. 그래서 학생들이 생각을 못 하다가도 다니엘이 툭 던져주는 수수께끼 덕분에 생각을 하게 되고, 세상을 보는 방식도 조금씩 바뀌게 됐대. "그리고 다니엘은 수업에 강의 자료를 한 번도 안 가져왔어!" 아비샤가 그랬대. "그냥 빈손으로 들어와서 바로 강의를 시작했지."

처음에는 아비샤도 다니엘 즉흥 강의를 좀 의심했대. 혹시 미리 다 외워놓고 수업 때 연기하는 거 아닐까 생각했거든. 근데 다니엘이 자기를 도와달라고 했을 때 그 의심이 싹 사라졌대. 아비샤가 회상했대. "다니엘이 나한테 와서 '아비샤, 히브리대학교에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필기 자료를 좀 달라고 하는데, 나는 없어. 네가 필기한 거 좀 빌려줄 수 있을까?' 라고 말했어. 진짜 즉흥적으로 하는 거였구나! 모든 게 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거였어!"

아비샤는 곧 다니엘이 자기 학생들도 자기처럼 모든 걸 다 머릿속에 집어넣기를 바란다는 걸 알게 됐대. 감각 수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아비샤는 예비군 훈련에 징집됐대. 다니엘한테 찾아가서 너무 우울하게 자기는 훈련 때문에 수업을 못 들을 것 같다고 말했대. 다니엘이 그랬대. "괜찮아. 책으로 배우면 돼." 그래서 "책으로 배우는 게 뭔데요?" 라고 물었더니 "책을 가져가서 다 외워." 라고 대답했대. 아비샤는 다니엘이 시키는 대로 했대. 훈련이 끝나고 돌아오니 기말 시험을 볼 수 있었대. 그전까지 책을 다 외워놨거든. 시험 채점 결과가 나오고, 다니엘이 반 학생들 앞에서 성적을 발표했는데, 아비샤 이름을 부르더니 손을 들라고 했대. "나는 손을 들면서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했지. 다니엘이 '네가 만점을 받았어. 이런 점수를 받으면 자랑해야지.' 라고 말했어."

히브리대학교에서 겸임 교수로 온 다니엘 수업을 두 개 듣고 나서 아비샤는 두 가지 결정을 내렸대. 첫째, 심리학을 연구해야겠다는 거. 둘째, 히브리대학교에 가서 공부해야겠다는 거. 히브리대학교는 천재 교수들이 많이 있는 곳이고, 그 교수들이 학생들한테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아비샤는 히브리대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시작했대. 1학년이 끝날 무렵, 심리학과 학과장이 학생들한테 찾아와서 교수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대. 그러더니 아비샤를 불러서 따로 물어봤대. "교수들이 어떻다고 생각하나?"

"괜찮아요." 아비샤가 대답했대.

"괜찮다고? 그냥 괜찮다고? 왜 그냥 괜찮다고만 말하는 거지?" 학과장이 물어봤대.

"제가 베르셰바 대학교 다닐 때, 어떤 교수님을 만났는데..." 아비샤는 막 이야기를 시작했대.

학과장은 금방 알아차렸대. 그러더니 "아, 어떻게 그 교수들을 다니엘 카네만이랑 비교할 수 있어? 비교하면 안 돼. 그건 너무 불공평해. 카네만 스타일의 교수라는 게 따로 있는 거야. 일반 교수들이랑 카네만 스타일의 교수를 비교하면 안 돼. 다른 교수들이랑 비교하면 누가 좋고, 누가 안 좋다고 말할 수 있지만, 카네만이랑은 비교하면 안 돼." 라고 말했대.

수업할 때, 다니엘은 엄청 똑똑하고 잘 가르쳤는데, 수업만 끝나면 감정 기복이 심해졌대. 아비샤는 그게 좀 놀라웠대. 어느 날 학교에서 다니엘을 만났는데, 엄청 우울해 보이더래. 아비샤는 그런 모습은 처음 봤대. 알고 보니 어떤 학생이 강의 평가에서 다니엘한테 안 좋은 점수를 줬는데, 그 때문에 다니엘이 엄청 힘들어했던 거래. "심지어 나한테 '내가 예전의 내가 맞을까?' 라고 물어보기도 했어." 다니엘 빼고는 다 그 학생이 멍청하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다니엘은 히브리대학교에서 제일 잘 가르치는 교수인데, 자기가 뛰어나다는 걸 믿게 하는 게 너무 어려웠어." 아비샤가 그랬대. 다니엘은 자기에 대한 안 좋은 평가를 너무 많이 신경 썼고, 그게 다니엘 성격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대. "다니엘은 자존감이 엄청 낮았어." 아비샤가 그랬대. "그게 다니엘 성격의 일부였지."

주변 사람들은 다니엘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대. 사람들이 다니엘을 마치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이 실험할 때 그린 그림처럼 생각했대. 여러 면이 있는 사람이었던 거지. 옛날에 같이 대학교에서 일했던 동료가 그랬대. "다니엘은 감정 기복이 엄청 심해서, 다음 순간 어떤 다니엘을 만나게 될지 예측할 수 없어. 감정적으로 약하고, 존경받고 사랑받고 싶어하고, 쉽게 불안해하고, 쉽게 영향을 받고, 쉽게 상처받고."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우고, 결혼해서 아들딸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다니엘한테 일이 전부인 것 같다고 생각했대. "다니엘은 일에만 집중하는 사람이었어. 행복해 보이지 않았지." 줄 샤피라가 그랬대. 다니엘 제자였고, 나중에 뉴욕대학교 교수가 된 사람이었지. 다니엘 감정 기복이 심해서 사람들 사이에 벽을 쌓는 것 같았대. 슬픔 때문에 벽을 쌓는 것처럼. "여자들은 다니엘을 좋아할 수밖에 없어." 다니엘이랑 같이 이스라엘 군대 심리 부서에서 일했던 야파 싱어가 그랬대. 다니엘 조교였던 달리아 에시안이 그랬대. "다니엘은 항상 의심을 품고 있었어. 처음 만났을 때 다니엘이 우울해하고 있었던 걸 기억해. 그때 수업하고 있었는데, 나한테 '학생들이 날 싫어하는 것 같아.' 라고 말했어. 나는 '그게 뭔 대수야?' 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신기하게도 실제로는 학생들이 다니엘을 엄청 좋아했거든." 또 다른 동료는 "다니엘은 우디 앨런처럼 유머 감각이 없어." 라고 말했대.

다니엘 감정 기복이 심한 건 단점이기도 했지만, 장점이기도 했대. 장점이라는 게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다니엘은 거의 무심하게 여러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됐거든. 나중에 생각해보니 어떤 심리학자가 될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던 거야. 왜냐하면 다니엘은 모든 종류의 심리학자가 될 수 있었고, 그렇게 될 거였으니까. 또 자기가 인간의 성격을 연구하는 능력에 자신이 없어서, 실험실을 만들어서 사람 눈을 연구하기 시작했대. 실험실에 긴 의자를 놓고, 몸을 고정하는 장치도 설치했대. 실험 참가자는 입에 치아 본을 물고 고정 장치에 앉아 있어야 했고, 다니엘은 기계로 참가자 눈동자에 여러 신호를 보냈대. 다니엘 생각에는 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면, 눈이 저지르는 실수를 분석하는 수밖에 없었대. 그런 실수는 많은 걸 알려줄 뿐만 아니라, 눈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었거든. "기억을 어떻게 연구해야 할까?" 다니엘이 물었대. "기억을 연구하지 말고, 망각을 연구해야지."

시각 실험실에서 다니엘은 사람 눈이 어떤 속임수를 부리는지 보고 싶어했대. 그는 눈이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빛을 감지할 때, 눈이 느끼는 밝기는 빛 자체 밝기에만 달려있는 게 아니라, 빛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에 달려있다는 걸 알게 됐대. 그러니까 빛의 강도랑 지속 시간이 같이 영향을 미치는 거지. 1밀리초 동안 10배 강도로 번쩍이는 빛은 10밀리초 동안 X 강도로 번쩍이는 빛이랑 구별하기 어렵다는 거야. 하지만 빛이 300밀리초 이상 지속되면 아무리 오래 지속돼도 사람들은 똑같은 밝기를 느낀대. 다니엘은 자기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몰랐대. 그냥 심리학 분야 전문 학술지에 이런 종류 내용이 실리고, 테스트 자체가 자기한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대. "나는 과학 연구를 하고 있어. 일부러 그러고 있는 거야. 내가 부족한 지식을 채우는 방법으로 이 일을 택한 거지. 엄격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어."

다니엘은 원래 그런 과학자 기질을 갖고 태어난 건 아니었대. 시각 실험실은 정확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다니엘 정확성은 사막 폭풍처럼 엉망진창이었대. 다니엘 사무실은 엄청 어질러져 있어서, 비서가 가위를 찾아주는 데 질려서 아예 가위를 끈으로 다니엘 의자에 묶어놨대. 관심사도 엉망진창이긴 마찬가지였어. 캠핑 가는 아이들이 텐트에서 몇 명이랑 같이 자고 싶어하는지 연구하다가 갑자기 성인들 입에 치아 본을 물리고 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연구하고 그랬대. 심리학자들도 다니엘을 이해하지 못했어. 성격 테스트를 하는 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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