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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러니까... 오늘은 말이죠, 음... '변화하는 운명'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해볼까 해요.
보에티우스라는 사람이 쓴 '철학의 위안'이라는 책에, "모든 운은 좋은 운이다. 왜냐하면 보상이든, 훈련이든, 개선이든, 아니면 벌이든, 모두 유용하거나 정의롭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뭔가 좀 심오하죠?
어쨌든, 그... '포춘'이라는 경제 잡지 아시죠? 거기서 1955년에 미국에서 제일 큰 기업 500개를 발표했는데, 그 이후로 매년 그렇게 발표를 하고 있잖아요. 근데 그 1955년 당시에 탑 10에 들었던 회사들이 어떻게 됐는지 보면, 규모가 크다고 해서 항상 잘 나가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1955년 리스트에 자동차 회사가 두 군데 있었는데, 제너럴 모터스, 그러니까 GM이 1등이었고, 크라이슬러도 있었죠. 근데 GM은 2009년에 파산 보호 신청을 했었고, 지금은 구조조정을 거쳐서 도요타, 폭스바겐, 현대자동차 다음으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자동차 회사가 됐어요. 현대자동차는 1955년에는 자동차를 하나도 안 만들었었고, 도요타도 일본 밖으로는 차를 팔지도 않았었죠. 그리고 지금은 테슬라가 미국에서 제일 가치 있는 자동차 회사잖아요. 2003년에 설립된 회사인데 말이죠.
크라이슬러는 1970년에 재정난을 겪어서 미국 정부가 도와줬었고, 유럽 사업부를 팔고, 리 아이아코카라는 사람이 와서 잠깐 부활하기도 했었죠. 1990년대에는 벤츠를 갖고 있는 독일 회사 다임러랑 합병했는데, 잘 안 돼서 결국 2007년에 사모펀드가 크라이슬러를 사갔어요. 크라이슬러도 2009년에 파산 신청을 했었고, 그 뒤에 이탈리아 회사 피아트가 미국 자동차 노조 연금 펀드랑 미국 정부랑 같이 돈을 대서 크라이슬러를 샀죠. 2021년에는 피아트-크라이슬러가 프랑스 회사 PSA랑 합병해서 지금은 스텔란티스라고 불리고 있어요.
1955년 리스트에는 식품 회사도 두 군데 있었는데, 스위프트랑 아머였어요. 근데 얘네들은 여러 번 주인이 바뀌고, 사업도 쪼개져서 지금은 브라질 회사랑 중국 회사가 각각 일부 사업을 가지고 있어요.
기름 회사도 세 군데 있었어요. 스탠더드 오일 오브 뉴저지라는 회사가 경쟁사였던 모빌을 샀고, 지금은 엑손모빌이 됐는데, 1955년이랑 2020년 리스트에 둘 다 이름을 올린 유일한 회사예요. 걸프 오일은 1984년에 기업 사냥꾼한테 공격을 받아서, 쉐브론, 그러니까 스탠더드 오일 오브 캘리포니아한테 도움을 받았는데, 쉐브론이 걸프 오일 자산을 일부만 가지고 나머지는 다 팔아버렸죠.
1955년 리스트에는 제조업체도 세 군데 있었어요. US 스틸은 계속해서 하락세를 겪었고, 화학 회사 듀폰은 한때 잘 나갔었는데... 나중에 실적이 안 좋아져서 코노코라는 회사를 샀는데 그것도 별로였고, 결국 2015년에 다른 화학 회사 다우랑 합병했어요. 그리고 나서 사업부를 세 개로 나눴는데, 그중 하나가 아직 듀폰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요.
제너럴 일렉트릭, GE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제일 잘 운영되는 회사로 여겨졌었는데, 인재를 키워서 다른 회사에도 보내주고 그랬었죠. CEO들도 다 유명했었고. 잭 웰치라는 사람이 1981년부터 2001년까지 CEO를 했는데, 그때 GE가 돈을 엄청 벌었었죠. 웰치는 GE가 1등 아니면 2등 할 수 있는 시장에만 관심이 있다고 했었대요. 금융 서비스 사업도 키웠었는데, 이게 한동안 GE 전체 수익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었거든요. 근데 웰치가 은퇴하고 2008년에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금융 서비스 사업이 너무 커서 GE 본업의 약점을 가리고 있었다는 게 드러났죠.
참, 포춘 500 리스트에는 소매 업체는 없었어요. 매출 기준으로 순위를 매겼다면, 시어스 로벅, 몽고메리 워드, JCPenney 같은 대형 쇼핑 업체들이 1등이었을 거예요. 근데 얘네들도 계속 하락세를 겪어서... 몽고메리 워드는 2000년에 파산했고, 시어스는 2019년에, JCPenney는 2020년에 파산했잖아요.
이 회사들이 이렇게 된 건, 자동차나 식품, 석유, 철강, 화학 제품, 전자 제품 같은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수요는 계속 늘고 있거든요. 사람들은 여전히 쇼핑도 하고요. 근데 이 1955년 회사들 중에서 지금도 업계 1위인 회사는 하나도 없어요. 자동차는 도요타랑 폭스바겐이고, 식품은 네슬레고, 철강은 아르셀로미탈, 화학 제품은 독일 BASF가 1등이죠. 전자 제품은... 뭘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어쨌든 GE는 아니잖아요. 미국 내에서는 GM이 아직 자동차 회사 1등이긴 하지만, 시가총액으로 보면 테슬라고요. 식품은 펩시코랑 타이슨, 철강은 뉴코어, 화학 제품은 화이자가 1등이죠. 소매 업체는 월마트랑 아마존이고요. 엑손모빌이랑 듀폰, GE 자회사 몇 군데만 겨우 살아남아서 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어요.
어떤 기자가 FAANG 기업들의 위세에 놀라서, 옛날에도 이렇게 잘 나가던 회사가 몰락한 경우가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오히려 옛날에 잘 나가던 회사가 계속 잘 나가는 경우가 더 드물다"라고 대답해줬죠. 1955년 포춘 500 탑 10 회사 중에서 크라이슬러 빼고는 다 19세기에 설립됐거나 그 회사의 후신이었거든요.
아, 2020년 포춘 500 리스트는 완전히 달라요. 이제는 서비스 회사도 포함돼서, 매출 기준으로 1등은 월마트, 2등은 아마존이에요. 1955년에도 그랬겠지만요. 특이한 건 미국 헬스케어 시스템 관련 회사들이 많이 올라왔다는 건데, 유나이티드헬스는 보험 회사고, 맥케슨이랑 Cencora는 제약 유통 회사고, CVS 헬스는 보험이랑 소매를 같이 하는 회사예요.
제조업체 중에서는 존슨앤드존슨이 유일하게 리스트에 올라와 있고, 워렌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도 제조업 자회사를 몇 개 가지고 있긴 해요. AT&T는 예전에 미국 통신을 독점했던 회사인데, 1982년에 반독점 소송 때문에 쪼개졌었잖아요. 그중에서 제일 작았던 Southwestern Bell이라는 회사가 있었는데, 이 회사가 다른 Baby Bells를 인수하고, 원래 AT&T가 가지고 있던 장거리 통신망도 사서 회사 이름을 AT&T로 바꾼 거예요. 위성 방송 DirectTV랑 타임워너도 샀다가 팔았고요. 2020년 탑 10에는 엑손모빌이 유일하게 1955년 리스트에도 있었던 회사죠.
1955년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회사들이 대부분 미국 회사였고, 아니면 유럽 회사였어요. 지금은 아시아 경제가 성장하면서 현대, 도요타, 삼성, 소니 같은 회사들이 많이 올라왔죠. 1955년이나 1975년에는 중국 회사가 어떤 산업에서든 세계적인 리더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을 텐데, 지금은 아무도 안 웃죠.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 같은 회사들이 세계에서 제일 가치 있는 회사들 중 하나잖아요.
1955년에는 매출, 고용, 자산, 이익, 주식 시장 순위로 회사를 평가했을 때 리스트가 거의 비슷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고용을 많이 하는 회사는 Compass, G4S, ISS처럼 청소나 식당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거나, 월마트, 홈디포, 타겟처럼 물건을 소비자한테 배달하는 회사, 아니면 UPS, FedEx, 아마존처럼 집으로 직접 배달하는 회사들이 많죠.
포춘은 은행 자산이 너무 많아서 회사 순위에서 제외했대요. 은행은 자산이 많은 만큼 부채도 많거든요. 그리고 2008년 금융 위기 때는 자산보다 부채가 더 많기도 했었고요. AT&T, 버라이즌, 컴캐스트 같은 인프라 관련 회사들도 자산이 많고, 포드나 GE 같은 제조업체도 매출이나 자산 규모가 크긴 한데... 아마 오래 가지는 못할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21세기 선두 기업을 알려면 이익이랑 시가총액이 제일 큰 회사를 봐야 하는데, 지금은 알파벳(구글), 아마존, 애플, 엔비디아, 메타(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가 시가총액 1조 달러가 넘는 회사들이에요. 그 뒤를 버크셔 해서웨이, 엑손모빌, 테슬라, 대만 TSMC가 쫓고 있고요.
애덤 스미스는 핀 공장에서 열 명의 직원이 열여덟 가지 작업을 하는 걸 예로 들었는데, 지금은 기업들이 훨씬 더 전문화되어있죠. Compass Group 같은 회사는 노동력만 제공하고, 은행이나 투자 회사는 자본만 제공하고. 어떤 회사는 회계 부서처럼 관리 서비스만 제공하고, 구글이나 메타 같은 회사는 플랫폼만 제공하고 콘텐츠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잖아요. 구글이랑 메타는 매출액 순위에서는 높지 않은데, 왜냐하면 주요 투입물도 안 사고 주요 산출물도 안 팔거든요. 광고 수익이 대부분이고, 그게 바로 이익으로 이어지니까. 21세기 기업은 1955년 포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려고 경쟁하던 회사들이랑은 완전히 다른 세상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