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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일상 속에서도 목적 찾기"라는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 해요. 혹시 프레드릭 뷰크너라는 작가 겸 신학자를 아시나요? 그 분 말씀처럼, 우리의 소명, 그러니까 목적이라는 건 "우리의 깊은 기쁨과 세상의 깊은 필요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하더라고요.
가끔 우리는 목적을 갖는 걸 목표를 세우는 거랑 헷갈려 하기도 하는데요, 목표를 세우는 것도 우리 삶에 방향을 제시해주는 건 맞지만, 목적은 단순히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주는 나침반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목표는 달성할 수 있지만, 인생의 목적은 완전히 이루거나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 또 다르죠.
솔직히 말해서, 자신만의 소명을 찾고 추구하는 건 결코 쉽지도 않고, 딱 한 번으로 끝낼 수 있는 일도 아니에요. 2002년에 나온 "내 인생,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책 아세요? 거기서 저널리스트인 포 브론슨이 인생의 목적을 찾았거나, 그걸 찾기 위해 노력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무려 900건 넘게 담았다고 해요. 그런데, 이 인터뷰를 통해 목적에 대한 놀라운 자기 제한적인 믿음들을 발견했다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목적을 찾는 게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거나,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는 거죠. 또 어떤 사람들은 목적을 찾는 게 비현실적이고, 오히려 삶을 풍요롭게 하기는커녕 돈만 탕진할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심지어 인생의 목적은 너무나 신비롭고 희귀해서 찾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대요.
하지만 여러분, 목적은 사치품이 아니에요. 만약 여러분의 삶이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가족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대출금을 갚는 데 집중되어 있다면, 그런 행동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주 상기시켜야 해요. 왜냐하면 여러분은 필수적인 보살핌과 지원을 제공하고 있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을 필요가 있거든요. 그 정도면 지금 당장은 충분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우리 대부분에게는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직업을 완전히 바꾸거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꿀 수 있는 자유나 자원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오히려, 목적을 추구한다는 건 내면의 작업을 기꺼이 하고, 우리의 기술과 능력이 어떻게, 어쩌면 이미 어떻게 충족되지 못한 필요를 채워주고 있는지 보는 것에 대한 문제거든요. 작든 크든 말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우선 몇 가지 질문부터 시작해 보는 거예요. 연구에 따르면, 어느 시점이든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3분의 1이 채 안 된다고 하는데요, 다음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거죠.
첫째,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나요? 그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거나, 그들의 고통을 줄여주고 싶나요? 아니면 세상의 어떤 조건을 개선하고 싶나요?
둘째, 그렇게 할 수 있는 재능, 기술 또는 개인적인 자질이 있다고 믿나요?
인생의 목적을 찾는 핵심은, 물론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위의 두 질문에 언제, 어떻게 "예"라고 답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대부분에게, 우리의 목적은 바로 코앞에 있거나, 우리 집 안에 숨겨져 있을지도 몰라요. 중요한 건, 스스로 그걸 찾도록 설득하는 거죠.
여기서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게요. 아마 답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여러분의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거예요.
셋째, 당신은 누구인가요?
우리는 자신을 부모, 배우자, 직원 등 우리가 맡고 있는 역할이나, 성공과 실패, 또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규정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잠깐, 그걸 모두 제쳐두세요.
"당신은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을 통해, 저는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 되도록 운명 지어졌는지, 즉 가능한 최고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라요. 이건 성공보다는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여러분의 의미와 관련된 부분이에요.
목적이 불분명한 사람들은 인생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보다 행복감이 낮다고 보고돼요. 목적을 찾는 과정이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죠. 심지어 목적을 찾기 시작할 때 생기는 불안감을 "목적 불안"이라고 부르는 신조어도 생겼을 정도니까요.
아쉽게도, 앉아서 목적을 찾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항상 효과가 있는 건 아니에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에서 목적을 찾는 건 드문 일이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죠. 만약 여러분이 운이 좋은 소수 중 한 명이라면, 정말 축하드려요! 하지만 나머지 우리들은 목적을 찾기 위해 다른 곳을 찾아봐야 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기억하세요, 제가 이 책 전체에서 계속해서 상기시켜 드리고 있는 것처럼, 의도를 가지고 목적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요.
외부적인 방법으로, 목적을 찾는 여정은 지역 자선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도 있어요. 정말 숭고한 일이죠. 하지만 책임감이나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행동을 선택하는 것은 더 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대신, 여러분 자신의 이유, 즉 다른 누구의 '왜'가 아닌 여러분 자신의 더 큰 '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길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다른 사람의 생각 대신 자신의 직감을 따를 때, 목적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타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죠. 자신을 올바른 장소에 두면, 무언가가 여러분을 부르는 순간이 올 수도 있어요.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이 땅에, 이 순간에 존재하게 된 이유인 거죠. 부름에 응답할 준비를 하세요.
목적은 지극히 개인적인 거예요. 대학 진학 여부를 결정하는 18세 청년의 목적은 인생의 마지막 몇 년을 어디에서 보낼지 고민하는 75세 할머니의 목적과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죠. 그 18세 청년의 목적은 자신의 세계관을 넓히고, 자신이 자란 작은 마을 사람들과는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의 어머니는 어떨까요? 그녀의 목적은 아들이 자신의 목적을 발견할 수 있도록 대학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두 번째 풀타임 직업을 구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일 수도 있겠죠. 그의 할머니는요? 그녀의 목적은 아들과 손자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면서,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딸과 손자에게 더 가까워지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최근에 아는 사람인 메건과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그녀는 약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메건은 어린 자녀도 있고, 매우 바쁜 직업도 가지고 있었는데, 시누이가 최근에 부탁을 해온 거죠. 그녀의 딸, 즉 메건의 조카인 몰리가 대학에 가기 전에 갭이어를 갖기로 했는데, 살 곳이 필요했던 거예요. 부모님과 함께 사는 건 메건과 정반대 편에 살고 있는 그녀에게는 쉽지 않았고, 몰리는 변화, 그것도 큰 변화가 필요했어요.
18세 소녀를 맡는다는 건, 게다가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인 집에서 그녀의 침대를 찾는다는 건 결코 작은 부탁이 아니었지만, 메건은 답을 알고 있었어요. 물론 그렇게 하면 자신의 삶이 더 힘들어지고, 더 복잡해지고, 감정적으로 더 불안해질 거라는 걸 알았지만, 거절은 선택 사항이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자신만의 혼란을 겪고 있는 조카가 이사 왔어요.
메건은 자신의 짐을 덜어내는 대신, 조카가 찾고 있는 것을 찾도록 돕는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이 도전을 받아들였어요. 몰리에게는 차가 있었어요. 다행히도, 그걸 타고 마을을 돌아다닐 수 있었고, 가끔 심부름도 하고, 근처에 사는 좋아하는 사촌을 만날 수도 있었죠.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건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그녀는 할 수 있을 때마다 집안일을 도왔어요. 하지만 어떻게 그녀를 집 밖으로, 최소한 소파에서라도 나오게 할 수 있을까요?
메건은 친구들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베이비시터나 강아지 산책 도우미를 찾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도록 부탁했고, 몰리에게 지역 축구 프로그램에 있는 지인의 연락처를 주면서, 자원봉사 코치를 찾고 있다고 알려줬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효과가 없는 것 같았죠. 그러다가 조카를 30대, 40대, 50대 엄마들 그룹에 소개했는데, 그들은 마을에서 가장 강하고 친절한 트레이너의 감독하에 거의 매일 지역 차고에서 함께 운동을 하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몰리가 나이 많은 수다스러운 여성들과 어울리는 걸 조금 창피해했고, 운동 강도에 질겁했어요. 하지만 이모는 계속해서 그녀를 다시 보내도록 설득했죠. 그래서 몰리는 계속 나갔어요. 결국 웃긴 일이 벌어졌어요. 이모가 함께 가지 못할 때도 몰리는 계속 나타났던 거죠. 그녀는 대리 엄마 그룹에서 따뜻함을 느꼈고, 점점 강해지는 자신의 몸에 자신감을 얻고 있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완전히 낯선 사람들이었던 여성 그룹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들 모두는 그녀의 삶에서 어려운 시기를 응원해주고 있었죠. 트레이너는 전혀 놀라지 않았어요. 그녀는 수년 동안 수백 명의 사람들이 차고를 거쳐 가는 것을 보았고, 모두 자신만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힘든 운동의 공유된 고통과 다양한 삶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사랑과 지지 속에서 위안을 찾고 있었고, 함께 땀을 흘리고 고통을 겪고 있었죠.
하지만 제 흥미를 가장 끌었던 건, 몰리의 변화가 아니라 메건의 변화였다는 거예요. 비록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강조된 부분은 아니었지만 말이죠.
제가 흥미롭게 생각했던 건, 조카가 힘든 시간을 잘 헤쳐나가도록 돕는 과정이 메건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거예요. 그녀는 자신의 일도 충분히 많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조카가 새롭고 멋진 모습으로 피어나는 것을 보는 기쁨은 메건의 삶에 목적과 경이로움을 가져다줬어요. 그녀는 결코 예상하지 못했고, 자신이 부족한지도 몰랐던 것이었죠.
결국 그녀의 어린 십대 자녀들은 더 이상 끊임없는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성장했고, 그건 안도감과 동시에 슬픔을 느끼게 했어요. 갑자기 예상치 못한 18세 소녀의 대리모가 되어주고, 모든 성인 여성 친구들이 그녀를 대신해서 조카를 부드럽게 보살피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자녀들이 스스로 도시락을 싸고 자전거를 타고 마을에 갈 수 있게 되자마자 엄마로서의 목적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새롭고 다른 버전의 엄마로서의 역할이 바로 코앞에 있었던 거죠.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수많은 코너들이 있다는 것도요. 그리고 어쩌면, 어쩌면 그녀는 방법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죠.
우리의 자기 반성적 사고 능력, 즉 우리 자신을 사고의 대상으로 삼고,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의 행동과 삶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삶의 목적에 대한 인지적 감각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해줘요.
삶의 목적 의식이 결여되면 활기를 잃을 수 있지만, 연구에 따르면 목적 의식을 개발하는 것은 수많은 이점과 관련이 있다고 해요. 삶의 목적 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고, 더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일상적인 신체적 질병과 제약이 적고, 전반적으로 건강이 더 좋다고 보고하거든요.
최근에 군 복무자들의 회복력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를 읽었는데요, 연구자들은 정서적 안정, 외향성, 감사, 이타주의, 그리고 삶의 목적을 갖는 것과 같은 여러 특성이 회복력을 예측한다고 밝혔어요.
이점은 계속 이어지는데요, 정신적, 신체적 건강 개선, 실행 기능, 기억력 및 전반적인 인지 능력 향상, 심지어 예방적 건강 관리 사용 증가 및 병원에서 보내는 밤 수 감소와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우리의 높아진 욕구는 과거와 미래 시제 모두에서 우리가 수행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돼요. 개인이 삶의 목적을 찾으면, 그들은 자신의 삶의 일부를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중요한 활동에 헌신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살아있음과 "중요함"을 느끼게 되죠. 미래의 모호성을 줄여주는 것이 바로 이 목적 의식이에요. 목적이 있으면 개인의 미래는 여전히 중요해요. 왜냐하면 그들은 완수해야 할 미완성된 일이 있기 때문이죠.
저를 포함한 많은 과학자들은 삶의 목적의 심리적, 사회적 차원을 포함하는 긍정적 건강에 대한 이론적 모델을 제안하고 테스트해왔어요. 좋은 건강에 대한 개념은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한 계획이 있고, 따라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고 묘사하죠.
제 친구이자 동료인 심리학자 캐럴 리프는 심리학에서 성숙의 정의는 "삶의 목적에 대한 명확한 이해, 방향 감각, 의도성을 강조한다"라고 말했어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경험에 대해 감동적으로 쓴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목적 의식은 궁극적으로 의미를 추구하는 의지, 즉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자 하는 동기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죠. 중요한 것은 개인이 다른 사람과 사회에 줄 가치 있고 가치 있는 것이 있다고 믿는지 여부예요.
리프는 목적을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보고, 목표를 소유하고 방향 감각을 갖는 것을 긍정적인 목적의 근거로 강조해요. 사회학자인 저는 성인의 삶은 다른 사람 및 커뮤니티와 함께, 종종 그들을 위해 살아간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인간 기능에 대한 개념을 주장해왔어요. 따라서 목적은 삶에 방향이 있는지 여부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이 다른 사람과 커뮤니티에 유용하고 건설적인지 여부이기도 해요. 이것이 바로 사회적 기여 의식, 즉 다른 사람이나 커뮤니티에 유용한 기여를 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번성하는 "잘 기능하는" 측면의 핵심 요소인 이유죠.
삶의 목적을 갖는 것과 목적 있는 삶을 사는 것에는 차이가 있어요. 후자는 제가 "진정한 목적"이라고 부르는 것, 즉 삶의 심리적 목적 의식과 사회적 기여 의식이 결합된 것이죠. 심리적 목적은 삶의 방향을 갖고 어떤 종류의 유산을 남기고자 하는 바람을 의미해요. 사회적 기여는 자신의 행동을 통해 세상에 변화를 주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는지 여부이고요.
20세기 후반은 사회생활의 점진적인 해체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어요. 결혼과 출산, 이혼과 동거의 시기에 대한 규범이 더욱 다양하고 확산되어 개인의 선택에 더 큰 책임이 부여되었죠. 앞서 말씀드렸듯이 지난 세기 동안 기대 수명이 크게 증가했는데, 이건 좋은 일이에요. 아이러니하게도 살아야 할 날이 더 많아지면서 우리는 예상해야 할 미래에 더 많이 직면하게 되고, 미래는 본질적으로 불확실하죠. 우리의 향상된 수명은 우려와 불안의 원인이 되었어요.
저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해결했다고 생각했지만, 삶이 닥쳐와서 다시 질문이 떠오르기 시작한 학생이 있었어요. 저는 제 교육 경력에서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보아왔죠. 학생들은 한 가지를 위해 길러지지만, 마음이 다른 방향으로 끌리면서 의심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제가 사랑하는 학생 중 한 명이 마음을 따르기로 결심했어요. 커리는 신입생 때 "행복의 사회학" 수업에 참여했는데, 수업을 시작한 지 몇 주 만에 그녀가 완전히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었죠. 그녀는 제 모든 수업을 듣고 심지어 사회학 전공을 선택하기로 결심했어요.
3학년 때 커리가 저에게 조언을 구하러 왔어요. 그녀는 저에게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녀는 어디에서 유학할지 고민하고 있었죠. 그녀는 저에게 아일랜드의 한 학교에서 아동 행동을 공부하는 심리학과 자리를 제안받았다고 말했어요. 그것은 실용적이고, 그녀의 전공과 일치하며, 부모님이 강력히 권장하는 것이었죠.
커리는 좋은 대학에 가서 안전한 직업을 얻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잘 계획된 삶을 사는 실용적인 중산층 교외 사고방식으로 자랐어요. 그녀의 오빠는 치과 대학을 졸업했고, 그녀가 알기로는 치과 의사로서 멋진 삶을 살 가능성이 높았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아마도 부모님이 교외 뉴저지에서 키운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착할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 안전한 길에 대한 뭔가가 그녀에게 불편하게 느껴졌고, 그녀는 그걸 알고 있었어요. 그녀는 저에게 제 수업이 얼마나 힘들었고, 제가 학생들에게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도록 강요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할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그건 사실이에요. 많은 사람들은 사회 과학과 행복 및 웰빙에 대한 연구가 솜털 같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저는 항상 제 수업을 꽤 엄격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저는 학생들이 번성할 가능성을 제가 그랬던 것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이길 바랐거든요. 그녀는 저에게 제가 제 수업을 너무나 좋아하는 이유는 제가 매주 과학적인 증거와 데이터를 제공하며 우리의 웰빙에 대한 헌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줬기 때문이라고 말했어요.
그녀는 지난 4년 동안 제가 가르쳐준 것을 상기시켜줬어요. "결국 인생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라고 그녀는 말했죠. "단지 기분이 좋아지거나 행복해지기 위한 것만은 아니죠, 그렇죠? 물론 그것도 일부죠. 하지만 그들이 봉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당신의 성공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당신의 돈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당신의 모든 삶의 선택은 어떤 종류의 성장이나 경험 또는 웰빙 증가가 아니라면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몇몇 제 수업을 들은 후, 저는 그녀가 웰빙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증거에 휩싸여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는 자부심으로 빛나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저는 그녀에게 다른 선택 사항이 무엇인지, 그녀가 너무나 유혹을 느끼지만 책임감 있게 선택할 수 없다고 느꼈던 것을 물어봤어요.
알고 보니 1년쯤 전에 제가 학생들에게 곧 있을 달라이 라마의 방문에 대해 말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것이 그녀에게 달라이 라마에 대한 수업을 듣도록 영감을 주었고, 그녀는 캠퍼스 방문 계획을 맡게 되었죠. 그녀가 고려하고 있는 다른 옵션은 티베트 불교를 공부하고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에 몰두하기 위해 인도로 이사하는 것이었어요. 그녀가 그 다른 길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녀는 똑바로 앉았고, 거의 흥분으로 빛나고 있었죠. 저는 그걸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녀도 그걸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그것은 그녀에게 정말 중요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빛이었어요.
저는 그날 오후에 매우 신중하게 말을 선택했어요. 저는 분명히 그녀가 불편하게 느낄 일에 밀어넣고 싶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저에게는 선택이 분명해 보였죠. 저는 그녀에게 그녀가 정말로 인도에 가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어요. 왜 그녀는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걸까요? 우리는 그녀의 선택 사항에 대해 신중하게 이야기했고, 그녀는 제가 옳다고 말했어요. 그녀는 정말로 인도에 가고 싶어했죠. 그녀는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이 그녀를 그곳으로 이끌고 있다고 확신했어요. 그녀의 열정이 그녀를 올바른 방향, 즉 그녀의 목적을 향해 가리키고 있었던 거죠. 틀림없이, 그녀는 결국 인도로 가기로 결심했고, 그녀의 말대로 그건 그녀의 삶의 방향을 바꿨어요.
오늘날까지 커리는 자신의 열정을 따르고 자신의 목적을 찾는 것이 진정으로 번성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에 꽤 집착하고 있어요. 제가 글을 쓰는 지금, 그녀는 사고방식, 웰빙 및 회복력에 대한 첫 번째 책을 쓰고 있죠. 저는 그녀가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커리는 자신의 복음을 널리 퍼뜨리고 있으며,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웰빙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격려하고 있어요. 학생이 선생님이 된 거죠.
목적을 찾기에 너무 늦은 때는 없을까요?
연구에 따르면 심리적 목적과 사회적 기여는 노년기에 감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어떤 방향과 의미를 가진 사람들은 그러한 목적을 다른 사람에 대한 사회적 기여로 전환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왜 노년기에 자신의 목적을 사는 것이 더 어려울까요? 저는 사회가 의미 있는 사회 기여를 위한 배출구와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어 노인 뒤쳐져 있다는 설명에 동의해요. 이것은 "구조적 지연"으로 알려져 있죠. 노인의 건강한 수명 증가는 노인들의 열정, 재능 및 관심을 전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규범 및 제도의 변화를 동반하지 못했다고 노인학자 마틸다 라일리는 말해요. 노인에 대한 사회의 목적, 즉 은퇴하고, 삶을 즐기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라는 것은 더 이상 노인들의 목적 추구를 반영하지 않죠. 저는 우리 사회가 노인들의 지혜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놓치고 있으며, 그 대가로 노년기에 번성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주장하고 싶어요.
하지만 문제는 60대와 70대에 시작되지 않아요. 진정한 목적의 그래프는 감소가 평균 은퇴 연령 이전, 일반적으로 54세에서 64세 사이에 시작된다는 것을 시사하죠. 성인이 정규 교육을 마치고 노동 시장에 진입하면 정규 종교 외에는 삶의 목적을 찾도록 장려하거나 돕는 다른 기관은 없어요. 결혼, 직장 내 승진, 자원 봉사 기회와 같은 삶의 단계가 목적 의식에 기여할 수 있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은 이러한 더 개인적인 삶의 단계에서 자신의 사회적 기여를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죠.
최근에 한 사람이 제게 오랫동안 큰 성공을 거둔 후 중대한 결정을 내린 좋은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어요. 스포츠 TV 제작 분야에서 타냐의 직업은 그녀가 NHL 플레이오프, 먼데이 나이트 풋볼 게임, 심지어 올림픽까지 전국과 해외를 여행할 수 있게 해줬죠. 한때 그녀는 너무 많이 여행해서 방문하는 모든 NFL 경기장의 계단을 뛰어 올라가기로 결심했어요. 그 직업은 재미있고, 힘들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상적이었지만 더 이상 그녀의 핵심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주지 못했어요. 더 이상 그녀가 아니었던 거죠. 왜냐하면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으니까요.
타냐의 아이들은 이제 다 자랐고, 막내가 대학 졸업을 준비하고 있었죠.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성인 생활 대부분을 보낸 번화한 도시에서 벗어나 조용한 주말 커뮤니티로 이사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었어요. 그녀 주변의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고, 그녀의 경력이 매우 보람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도 변할 때가 되었다고 느꼈죠. 그래서 53세의 나이에 그녀는 자신의 꽃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어요.
타냐는 항상 꽃을 사랑해왔죠. 그녀가 매우 아끼던 어머니가 그녀에게 꽃꽂이의 기본을 가르쳐줬고, 그녀는 완벽한 꽃꽂이로 순간에 색깔, 기쁨, 아름다움을 가져다주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녀는 수년 동안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그렇게 해왔지만, 이제 그녀는 자신의 기쁨을 조금 더 멀리 퍼뜨리고 싶었던 거죠. 그녀는 소규모로 시작해서 몇몇 친구에게만 알렸지만, 그녀의 사업은 성장했어요. 몇 달 만에 그녀는 결혼식, 졸업식, 생일 파티를 열고 레스토랑 로비를 위한 꽃꽂이를 만들고 있었죠.
알고 보니 그녀의 가장 큰 기쁨은 다른 사람에게 관대해지는 것이었어요. 그녀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항상 그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 안에서 그걸 보지 못했죠. 그것이 그녀의 목적이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햇살을 전파하고, 그녀가 아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순간을 아름답고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것 말이죠. 그녀의 첫 번째 경력의 황혼과 빈 둥지가 되는 것은 그녀를 망치지 않았어요. 그것은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고, 그녀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조사하도록 강요했죠. 제 친구는 그녀가 항상 놀랍고 멋진 여성이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이제 그녀 주변에서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녀 안에 존재하는 내부 온도계가 무엇이든, 그것은 아주 뜨거웠던 거죠. 항상 이렇게 분명한 것은 아니에요. 유레카 순간은 드물지만, 여러분이 속도를 늦추고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가진 것으로 다른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알아내면, 여러분도 자신의 목적을 찾을 수 있다고 믿어요.
행동 계획: 예상치 못한 기회를 활용하여 자신의 빛을 찾으세요. 의미 있는 도전으로 성장하고 기여할 수 있는 선택 사항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성인기에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어요. 은퇴와 경력의 끝자락에 다다르는 것은 삶의 "어리석음"의 정점이 될 수 있죠. 사회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노인과 은퇴자들에게 사회적 관련성이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타냐처럼 자신의 삶에서 자연스러운 변화와 전환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내면의 필요가 무엇인지 재평가할 기회로 삼을 수 있어요. 그런 다음 변화와 싸우는 대신, 변화에 따라 흐를 수 있죠. 하지만 자신의 빛을 찾는 방법에 집중하지 마세요. 대신, 외부로 집중하려고 노력하세요. 다른 사람의 행복을 돕고 기여하는 것이 어떻게 자신 안에서 최고의 빛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주목하는 거죠.
젊은 사람들은 어떨까요? 정규 교육이 그들이 자신의 소명을 찾도록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그들은 어린 나이에 자신의 진정한 목적을 찾고 결정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우리는 젊은 성인들을 삶의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성인기로 진입시키는 데 잘하고 있을까요?
네, 그리고 아니오. 11세에서 21세 사이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4분의 1이 목적을 찾는 데 몰두하고 있었고, 이는 그들이 목적을 정하지 못했지만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10명 중 1명은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행하지 않았고, 이는 그들이 목적은 있지만 사회적 기여 의식은 매우 낮다는 것을 의미하죠. 중고등학생들은 대체로 삶의 목적이 없었고, 16%만이 자신이 실행하고 있는 분명한 목적 의식을 보고했어요.
대학에 입학할 때쯤에는 좋은 소식이 있었어요. 19세에서 21세 사이의 10명 중 4명이 진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진정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은 예술, 지역 사회 봉사, 영적 노력, 가족을 통해, 그리고 가족 안에서 목적을 찾고 실행하고 있었죠. 하지만 40% 이상의 학생들은 자신의 목적을 찾지 못했어요. 제가 무섭게 생각했던 것은 그들이 자신의 목적을 찾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는 거예요.
연구에 따르면 젊은이들이 더 친사회적인 지향성을 발전시키려면 성인이 친사회적인 지향성과 일치하는 직업적 열망의 롤 모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요. 당신은 우주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거나 적어도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성공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능숙해지려는 열망의 관점에서 자신의 일을 설명하시겠어요? 소비 또는 기여의 관점에서 자신의 일을 설명하시겠어요?
자신이 다른 사람과 사회에 주는 것보다는 자신이 얻는 것, 즉 자신이 어떻게 도움을 받는가에 대해 자신의 일을 설명하는 부모는 기여 기반 및 친사회적인 것보다는 소비 기반 및 이기적인 삶의 지향성을 모델링할 수 있어요. 부모가 자녀의 직업적 꿈과 열망에 응답하고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일 수 있죠.
행동 계획: 자녀가 미래 직업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면 그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 그들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어떤 종류의 라이프스타일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일을 더 이기적으로 만들 수 있어요. 자녀가 다른 사람이나 사회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세상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지 설명함으로써 자녀의 직업적 열망에 대해 흥분하는 것은 그들이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더 친사회적인 방향으로 집중하도록 도울 수 있고, 그것은 그들이 일에서 물건을 획득하고 소비하는 것보다 기여하는 것이 될 거예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성공이 번성을 희생시키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아시아계 미국인 패러독스라고 부르는 현상이 이 수수께끼의 훌륭한 예가 될 수 있죠. 제 연구에 따르면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정신 질환이 상대적으로 없지만 번성하는 비율은 매우 낮아요. 왜 그럴까요?
아시아계 미국인 가족은 백인(75,412달러), 라틴계(60,566달러), 아프리카계 미국인(46,774달러) 가족과 비교했을 때 가장 높은 중간 소득(100,572달러)을 가지고 있어요. 고소득 가구는 일반적으로 고등 교육 수준과 높은 지위의 직업을 가진 성인이 가장이고, 결과적으로 사회 경제적 지위가 더 높죠. 자녀의 삶의 질, 건강 및 성공은 가족의 사회 경제적 지위 증가와 긍정적으로 상관관계가 있어요. 어떤 사회학자든 좋은 정신 건강 결과가 다음과 같이 순위가 매겨질 것이라고 예측할 거예요. 아시아계 학생이 가장 잘하고, 그 다음이 백인 학생, 라틴계 학생이 3위를 차지하고,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생이 최악의 정신 건강을 보고할 것이라고요. 즉, 정신 질환 및 쇠퇴율이 가장 높다고 말이죠.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에요.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들은 지표가 우리를 믿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비율로 쇠퇴하고 있죠. 하지만 왜 그럴까요?
설명의 일부는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방해가 되기도 하는 "모범 소수" 고정관념 때문이에요. 고정관념은 아시아계 미국인이 근면하고, 자급자족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학업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성공적이라는 것이죠. 다른 인종 및 민족 그룹에 비해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들은 GPA와 성취도 시험 점수가 더 높고, 영재 학업 프로그램에 더 많이 참여하고, 명문 대학에 더 많이 입학해요.
아시아계 미국인 패러독스는 문화적 가치와 관행의 융합으로도 설명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성취는 아시아 문화와 미국에 있는 아시아인 가족에서 더 강조되는 것 같아요. 부모와 가족은 자녀가 학업적으로 잘하고 사회적 지위와 급여가 높은 고위 직업을 선택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고 실제로 가하죠.
아시아계 미국인 청소년은 자신의 가족과 자녀의 성공을 돕고 더 많은 기회를 갖도록 희생한 것에 경의를 표하기 때문에 학업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더 많이 느낀다고 보고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러한 성공적인 젊은 학생들은 종종 부모의 기대치가 매우 높고 때로는 달성할 수 없다고 설명하죠. 그들의 능력과 학문적 관심은 항상 부모의 직업 기대치에 반영되지 않으며, 이로 인해 의사, 변호사, 은행가, 엔지니어 또는 자연 과학 분야의 전문가로서 고급 학위와 직업을 추구하도록 압력을 받죠. 그들의 끊임없는 노력은 성공의 열쇠이지만 양날의 검과 같아서 젊은이들이 자신의 성취를 음미하고 미래 목표를 설정할 때 자신과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해 기분 좋게 느끼지 못하게 해요.
부모의 기대는 학생의 충족되지 않은 기대의 증가를 예측해요. 1990년에서 2020년 사이에 청소년의 완벽주의에 대한 다양한 측정과 미국, 캐나다, 영국에서 부모의 학업 행동에 대한 영향에 대한 인식을 상관시킨 수많은 연구가 발표되었죠. 1990년부터 세 국가 모두에서 부모의 영향력의 세 가지 형태가 모두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요. 왜일까요?
몇 가지 그럴듯한 원인이 있어요. 부모는 그 어느 때보다 자녀의 학업 생활에 더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여 증가는 교육 수준이 높고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은 부모 사이에서 더 크게 나타나는 것 같아요. 부모는 자녀와 함께 놀고 여가를 보내는 데 시간을 덜 할애하고 자녀와 함께 학교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죠. 이러한 변화는 부모가 성공을 거둔 가족에서 더 극적으로 발생했어요. 더 많은 교육과 더 권위 있고 더 나은 급여를 받는 직업은 모두 자신의 초기 성공을 만든 것과 동일한 플레이북을 자녀의 성공을 위해 사용하도록 장려하죠. 저는 또한 대학의 증가하는 비용과 솔직히 엄청나게 높은 비용 또한 부모가 자녀에게 경제적 성공을 위한 명확한 경로로 대학을 졸업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에 대한 증가하는 기대와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어요.
이러한 모든 요인은 부적응적인 완벽주의, 즉 매우 높고 따라서 충족되지 않은 기대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처벌적인 비율에 도달했어요. 이러한 종류의 완벽주의는 놀라운 학업 성취에서 발생할 수 있는 웰빙을 훼손하죠.
적응적 또는 건강한 완벽주의라는 것도 있어요. 그것은 여러분과 여러분을 아끼는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높은 기준과 기대를 가지고 있는 종류예요. 따라서 여러분은 열심히 노력하고 자신의 열망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죠. 건강한 완벽주의에서 빠진 것은 자기 판단이에요. 건강한 완벽주의는 인지된 단점이나 실패에 대해 자신을 자책하는 것을 포함하지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