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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culating...

아,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진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해요. 우리가 사는 세상, 그리고 우리 삶의 궤적이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흔히들 "시공간"이라는 단어 들으면 막 아인슈타인 생각나고, 뭔가 복잡한 물리 법칙 떠올리잖아요? 근데, 사실 이 시공간이라는 개념이 우리 일상생활이나 사회 변화를 이해하는 데 훨씬 유용하다는 거 아세요?

쉽게 말해서, 뭐가 일어났느냐 만큼이나 어디서, 언제 일어났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죠. 동전 던지기는 언제 어디서 하든 결과가 거의 똑같지만, 사회 현상은 위치나 시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거든요. 근데 잠깐, 시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가 좀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짚고 넘어가야 해요. 뭐냐면, 우리 삶이나 사회의 궤적이 종종 숨겨진 지구의 지각 변동에 의해 흔들린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영국이랑 미국의 역사를 한번 생각해 볼까요? 영국은 약 8천 년 전에 노르웨이에서 엄청난 산사태가 일어나면서 유럽 대륙이랑 분리됐어요. 이 산사태가 쓰나미를 일으키면서 바다가 점점 높아졌고, 결국 영국이 섬이 된 거죠. 영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데, 역사책에는 잘 안 나와요. 하지만, 그 이후의 모든 사건은 영국과 유럽 사이에 육로가 없다는 사실에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특히, 강력한 해군을 바탕으로 제국을 건설한 과정에서 그 영향이 가장 컸죠.

해군에는 배가 필요하고, 배에는 목재가 필요하잖아요. 18세기 말에 영국 해군은 120만 그루의 나무로 만든 300척의 배를 운용했어요. 나무를 너무 많이 써서 숲이 파괴되고, 영국 땅의 모습 자체가 변해버린 거죠. 좋은 목재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니까, "정치인들이 좋은 나무를 얻으려고 몰래 계획을 세우고, 전함들은 좋은 나무를 확보하려고 싸웠다"는 말까지 나왔다니까요.

이때 미국이 영국 해군을 구할 '구원투수'가 된 거예요. 광활한 숲이 있는 대륙이었으니까요. 코네티컷 주지사는 "구름에 입 맞추는" 소나무가 있다고 자랑하기도 했죠. 초기 미국 정착민들은 이 소나무를 베어서 집을 지었는데, 영국 왕은 그 나무들을 해군에 쓰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정부 관리들이 숲을 돌아다니면서 키가 큰 나무에 왕의 표시, 즉 도끼로 찍어서 "화살표" 모양을 새겼어요. 당연히 불법 거래가 시작됐죠.

1772년 겨울, 왕실 측량사가 뉴햄프셔 주 웨어 근처에서 화살표 표시가 있는 나무를 가공하는 제재소 여섯 군데를 발견했어요. 제재소 주인들은 체포됐고, 마을 사람들은 이걸 엄청난 불의라고 생각했어요. 1772년 4월 14일 새벽, 폭도들이 왕의 집행관이 자고 있던 파인 트리 선술집으로 몰려갔어요. 그리고 그가 왕실을 위해 되찾은 나무 한 그루당 한 대씩, 나뭇가지로 만든 회초리로 그를 때렸죠.

이른바 '파인 트리 폭동'은 미국 독립 혁명의 간접적인 계기가 됐어요. 왕은 가혹한 처벌이 반란을 일으킬까 봐 걱정해서 폭도들을 가볍게 처벌했죠. 이 '솜방망이' 처벌은 왕의 통치에 점점 불만을 품고 있던 미국 식민지 사람들을 더 대담하게 만들었어요. 역사가들은 파인 트리 폭동을 '보스턴 차 사건', 그리고 더 나아가 독립 전쟁과 미국 독립의 주요 촉매제로 보고 있어요. 키 큰 나무들이 미국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거죠. 전쟁이 끝난 후 미국 해군은 나무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깃발을 사용했는데, 흰색 배경에 키 큰 소나무 한 그루가 그려져 있었대요.

가끔 "지리가 운명이다"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좀 과장이 섞인 표현이긴 하지만, 우리가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라는 사실을 지워버리는 말이기도 하죠. 하지만 지리는 우리가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바탕'을 제공하는 건 분명해요. 우리 삶은 물리적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고 방향이 바뀌니까요. 우리는 보통 인간에만 집중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글자'에만 관심을 기울이죠. 역사가 일어나는 '종잇장', 즉 자연은 그저 배경처럼 느껴지고요. 하지만 사실 자연은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우리가 지리와 지질학의 힘과는 동떨어진 존재라고 착각할 때가 많아요. "자연" 속에 들어간다고 말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지구의 일부이고, 지구는 우리 일부예요. 그리고 우리는 종종 우리가 사는 땅의 '수혜자'이거나 '희생자'가 되기도 하죠.

태초부터 우리 몸은 물리적 환경에 의해 만들어졌어요. 약 2백만 년 전까지 우리 조상들은 나무 위에서 잠을 자면서 편안하게 둥지를 만들었죠. 우리의 지문도 이 시대의 흔적일 수 있다는 설도 있어요. 지문은 매끄러운 물체를 잡을 때 접촉 면적을 줄여서 그립감을 떨어뜨리지만, 젖은 상태에서는 특히 거친 표면, 예를 들어 나뭇가지 같은 것을 잡을 때 그립감을 향상시키거든요. 지문의 굴곡이 나뭇가지 껍질의 굴곡과 맞물리기 때문이죠. 이게 바로 우리 손가락 끝에 있는 독특한 소용돌이 모양의 '지문'에 대한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이에요. 나무 위에서 살던 시절의 흔적인 거죠. '나무의 시대'의 저자인 롤랜드 에노스는 우리의 초기 수목 생활이 손톱의 기원일 수도 있다고 주장해요. 인간 이전의 영장류는 부드러운 손가락 패드를 가지고 있어서 나뭇가지나 잔가지를 쉽게 탐색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발톱이 필요 없었고, 대신 스스로 다듬어지는 손톱으로 변형되어 바퀴의 테두리가 자동차 타이어를 지지하는 것처럼 패드를 단단하게 지지하는 역할을 했다"는 거예요.

우리는 유인원에서 진화했지만, 어떤 종류의 유인원에서 진화했는지는 지각판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됐어요. 2천만 년 전에 거대한 판 두 개가 충돌하면서 티베트 고원이 생겼어요. 이 고원은 동아프리카에서 습기를 빼앗아 건조하게 만들었고, 과학자 루이스 다트넬의 말처럼 "타잔 세트장에서 라이온 킹 세트장"으로 환경을 바꿨죠. 유인원 개체군은 기후에 따라 분리되어 아프리카 유인원과 아시아 유인원으로 나뉘었어요. 그리고 아프리카 유인원이 결국 우리가 된 거죠.

지구는 또한 우리의 지능 발달에도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우리의 조상 유인원은 동아프리카의 '지구대' 지역에 살았는데, 그곳은 기후가 불안정하고 지형이 다양했어요. 지각 활동 때문에 지구대는 험준한 지형을 가지고 있었죠. 생존을 위해 우리 조상들은 여러 환경에 적응해야 했어요. 그래서 민첩한 지능을 가진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하게 된 거죠. 기후의 급격하고 예상치 못한 변화 때문에 똑똑해져야 한다는 진화적 압력이 더 강해졌을 가능성도 있어요. 지구대의 분지는 때때로 물로 채워져서 기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증폭기 호수"를 만들기도 했어요. 이 호수들은 순식간에 가득 찼다가 순식간에 말라버리기도 했죠. 이런 극심한 변화는 그 지역의 생명체에게 엄청난 압력을 가했어요. 놀랍게도, 지구대에서 살았던 '호미닌' 화석에 대한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급격한 기후 변화 시기가 화석 기록에서 관찰되는 뇌 크기 확장의 시기와 겹친다고 해요. 또한 인간은 극심한 기후 변동의 세 시기에 더 발전된 종류의 도구를 발명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이러한 연관성 때문에 일부 과학자들은 우리의 지능이 이러한 갑작스럽고 급격한 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진화했으며, 지능과 그로 인해 가능해진 사회적 협력이 생존에 유용했다고 결론지었어요. 지질학적으로 뜨거운 곳에서 일어난 혼란스러운 기후가 우리가 똑똑한 이유일 수도 있다는 거죠.

나중에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나타났을 때, 아마도 또 다른 기후 변화 때문에, 초기 인류는 유라시아로 퍼져 나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았어요. 그런데, 다트넬이 지적했듯이, 주요 고대 문명의 지도를 지구의 지각판 위에 겹쳐보면 놀라운 관계가 나타난대요. 페르시아와 아시리아는 아라비아판과 유라시아판 사이의 경계선에 바짝 붙어 있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각 경계 근처에 도시 국가를 건설했대요. 고대 제국은 무작위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지구 표면 아래 숨겨진 단층선에 의해 인도되었다는 거죠.

일단 정착하고 나면, 환경이 초기 문화를 형성했어요. 왜 그리스인들은 통일된 제국이 아니라 그 유명한 다양한 도시 국가를 발전시켰을까요? 다시 말하지만, 그 답은 부분적으로 지리에 있을 수 있어요. 초기 그리스 도시 국가 약 1천 개가 에게해, 이오니아해, 지중해로 분리된 섬에 주로 생겨났죠. 험준한 산악 지형과 바다 때문에 정복으로 통일하기가 어려웠던 거예요. 대신 수많은 독립 도시 국가가 발전했고, 각자 사회를 조직하는 새로운 방법을 실험했죠. 정치적 다양성은 철학적 논쟁을 촉발했고, 이는 인간 사상의 혁신을 위한 촉매제가 되기도 했고요. 그렇다면 만약 아테네가 쉽게 정복할 수 있는 스텝 지역에 있었다면 서양은 고대 그리스의 영향을 그렇게 많이 받았을까요? 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죠.

오늘날 사회 변화에 대한 설명은 지리적 또는 지질학적 요인을 거의 포함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경제학과 정치학 분야에서는 지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모델을 일상적으로 만들어내요. 그 방정식에서는 마치 우리가 평평하고 특징 없는 균일한 세계에 사는 것처럼 여겨지는 거죠. 우리는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가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하지만, 지구가 우리를 어떻게 만들어가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멈춰서서 생각하지 않아요.

지질학과 지리의 역할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몇 가지 개념이 필요해요. 첫 번째는 '지구의 복권'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이는 우리가 사는 물리적 환경의 자의적인 특징을 말하는 건데, 대부분 변하지 않아요. 적어도 우리가 역사를 측정하는 시간 척도에서는요. 예를 들어, 영국이 섬이라는 사실이나 미국에 내해가 없다는 사실은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시간 척도에서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의적인 풍경은 인간의 선택을 형성해요.

하지만 인간이 결정을 내릴 때, 하나의 중요한 선택이 오랫동안 고정된 궤적을 만들 수 있어요. 이게 바로 '경로 의존성'이라는 개념이죠. 과거의 결정은 미래의 결정을 제약해요. 보르헤스의 '갈림길 정원' 비유를 사용하자면, 한 길을 걸으면 미래에 다른 길로 갈 가능성이 닫히는 반면, 새로운 길을 탐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수도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그 길 중 일부는 쉽게 되돌릴 수 없어요. 특정 궤적에 갇힐 수도 있는 거죠. 과거의 인간이 환경과 상호 작용한 방식은 현재의 사회를 바꾸고, 심지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까지 결정할 수 있어요.

이건 인간 문명이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온 곳에 살면 더 분명해져요. 저는 지금 영국 윈체스터에 살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자연 경관이 과거와 현재의 인간 궤적을 어떻게 바꾸는지 무시하기가 불가능해요. 가끔 개를 데리고 도시 근처 언덕을 산책하거든요. 수천 년 전 철기 시대 정착민들은 그 언덕을 유용한 자연 방어 시설로 여겼어요. 그들은 언덕 꼭대기에 요새를 세웠고, 지금의 윈체스터를 그 자리에 고정시켰죠. 로마인들이 폐허에 자리를 잡았고, 앵글로색슨족이 그 뒤를 따랐고, 노르만족이 그 뒤를 따르고, 계속해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요. 제가 사는 곳, 제 사회생활, 심지어 개 산책까지도 수천 년 전에 방어할 수 있는 언덕을 찾아다니던 철기 시대 정착민에 의해 부분적으로 결정되었다는 생각은 매력적이고 정확한 생각이죠. 이게 바로 지리적 경로 의존성이에요.

경로 의존성은 방향을 바꾸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대부분의 철도는 표준 궤간 폭을 사용하잖아요. 일단 철도망을 건설하고 그에 맞는 열차가 있으면 선로를 변경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전체 망을 교체하고 열차를 바꿔야 하죠. 이 예를 보면 경로 의존성이 시스템 외부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일부 국가에서는 열차가 국경을 넘어 운행될 수 있도록 다른 국가에서 내린 역사적 결정에 따라 궤간이 결정되기도 하죠. 특정 역사적 순간에 인간이 물리적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단 하나의 인간 선택 또는 일련의 작은 인간 선택은 미래 세대가 따르는 궤적을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정말 짜증나는 점은 어떤 결정이 경로 의존성을 만들지 미리 알 수 없다는 거예요. 대부분의 철기 시대 정착민은 현대에 눈에 띄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거든요. 아주 가끔, 돌이켜보면 오래전에 죽은 인간이 역사적 궤적을 바꿔서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마지막으로, 역사를 바꾸는 가장 흥미로운 유형의 지리와 지질학이 있어요. 저는 이걸 '인간 시공간 우연성'이라고 불러요. 지리적 또는 지질학적 사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에게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해지고, 인간 문명과 우연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할 때만 변화의 동인이 돼요. 예를 들어, 석유는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 땅 아래에 약 1억 6천만 년 동안 묻혀 있었지만, 19세기에 내연 기관이 발명된 후에야 인간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어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는 1938년에 발견됐는데, 그해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낙타로 운송하는 경우가 많아서 바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대요.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죠. 이 갑작스러운 변화는 지질학적 요인이나 인간적 요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요. 특정 시공간에서 이 둘의 상호 작용이 사우드 왕국이 검은 금을 현금화할 수 있게 해줬다는 거죠.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우리와 물리적 환경과의 상호 작용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주요 촉매제라는 것을 알게 돼요. 지리가 인간의 역사, 그리고 우리 개인의 삶을 형성한다는 생각은 새로운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변화에 대한 설명으로서는 인기를 잃었어요. 그래서 이런 의문이 생기죠. 우리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 그렇게 분명하다면 왜 그렇게 논쟁거리가 될까요? 왜 물리적 세계가 사회적 설명에서 크게 삭제되었을까요? 그 답은 불행히도 역사의 우연한 순간에서 찾을 수 있어요. 과거에는 영향력 있는 사상가들이 지리적 설명을 잘못 사용하여 끔찍한 목적을 달성했고, 심지어 다소 인접한 아이디어까지 유해하게 만들었죠. 그리고 그건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고요.

요즘에는 어떤 주장이 "지리적 결정론"이나 "환경 결정론"에 의존한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와 사회 과학에서 심각한 모욕이며, 학문적 주장을 즉시 무시하는 방법이 되었어요. 지리가 결과를 형성한다는 아이디어가 수천 년 동안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해할 만해요. 고대 중국에서는 관중이라는 재상이 흐름이 빠르고 구불구불한 강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탐욕스럽고, 무례하고, 호전적"이라고 주장했대요. 고대 그리스에서는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스키타이인들은 불모의 땅에 살기 때문에 남자들도 무능할 것이라고 추론했죠. 14세기 아랍 학자이자 사회 과학의 아버지인 이븐 할둔은 더운 기후 때문에 피부가 검어지고 환경이 유목민인지 정착민인지도 결정한다고 주장했어요. 수세기 후 이 이론들은 프랑스 역사가이자 정치 철학자인 몽테스키외에게 영향을 미쳤고, 몽테스키외는 기후 기반 이론으로 돌아가 유럽인을 인종 계층의 최상위에 올려놓았죠. 결국 지리적 인종 차별은 백인 압제자들이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한 지적으로 파산한 개념의 판테온에 갇히게 됐고요. 따라서 끔찍한 인종 차별적 과거를 가지고 있고, 편협함, 폭력, 심지어 노예화까지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 모든 사고방식을 깊이 의심하는 것이 당연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환경은 과거 사상가들이 지리적 설명을 인종 차별을 위한 구실로 사용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역사를 부분적으로 결정하는 핵심 요소예요. 물리적 환경이 특정 사람들을 열등하게 만든다는 주장과 환경적 요인이 선택을 제약하고 특정 지리에 있는 사회가 따를 가능성이 더 높은 역사적 경로를 만든다는 것을 입증하는 주장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어요. 인간의 행동과 환경적 요인의 교차점은 종종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아요. 영국은 나무가 있어서 배를 만들 수 있었고, 섬이어서 배를 만들고 싶어 했어요. 만약 현대인이 지질학적 역사의 다른 시기에 나타났다면 영국은 내륙의 황무지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영국 해군도 없었을 것이고, 아마도 영국 제국도 없었을 거예요. 지리적 요인은 사람들이 내리는 선택을 바꾸고, 그게 역사를 바꾸는 거죠.

하지만 20세기 중후반에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지적 도그마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숙고를 거쳤어요. 환경적 또는 지리적 결정론은 사회 이론에서 대부분 제거되었고, 인간 역사의 일부 측면, 심지어 총체적인 불의와 불평등까지도 선택에 의해서만 결정된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지질학적 우연에 의해서도 결정되었는지 여부를 고려하는 것조차 학문적 죄악이 되었죠.

1990년대 후반에 지리학자이자 조류학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지리적 결정론을 다시 유행시켰어요. 그의 책 '총, 균, 쇠'는 예상외로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오랫동안 지적 주변부로 밀려났던 아이디어를 되살렸죠. 다이아몬드는 현대의 불평등은 선천적인 지적 능력이나 문화적 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일부 사회가 번성하기 더 어렵게 만들고 다른 사회가 운이 좋아서 발전된 문명을 건설할 수 있는 이상적인 조건을 갖게 된 지리적 자원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어요. 지구는 자원, 포식자, 질병을 공정하게 분배하지 않고, 이러한 불공정한 지질학적, 지리적 변동은 극도로 불평등한 현대 세계에서 나타났다고요.

'총, 균, 쇠'에서 다이아몬드는 인간의 역사가 대륙의 모양과 방향에 의해 바뀌었다는 점도 지적했는데, 이를 '대륙 축 이론'이라고 부르죠. 기후, 서식지, 식생, 토양, 야생 동물은 주로 위도에 따라 결정되고, 경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에요. 북쪽이나 남쪽으로 이동하면 기후가 급격하게 변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다른 전략이 필요하죠. 하지만 동쪽이나 서쪽으로 이동하면 특히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수천 마일을 이동해도 대체로 같은 종류의 생물 군계에 있을 수 있죠. 그 결과 사람, 아이디어, 무역, 기술 교류, 심지어 제국까지도 북쪽에서 남쪽보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퍼지는 것이 더 쉬웠죠. 다이아몬드는 이것이 아프리카 내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던 이점을 유라시아에 부여했다고 주장했어요. (유럽에서 북아프리카를 거쳐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로 가는 북쪽/남쪽 통로에 상당히 큰 사막이 있다는 점도 도움이 되지 않았고요.) 역사가들이 오랜 역사 동안 거대 제국의 확산을 시험해 본 결과, 실제로 동/서 패턴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대요. 군대가 자신의 생물 군계 내에서 가장 효과적인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따뜻한 기후 군대는 추운 기후 전쟁에서 잘하지 못하고, 산악 군대는 사막에서 잘하지 못하거든요.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 기후, 지리적 지형, 토양의 지질학적 특성이 우리를 만들고 우리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형성해왔다는 거예요. 논쟁은 인간의 행동에 의해 얼마나 많은 것이 추진되고, 지구의 복권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이 추진되는지에 달려 있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평가들은 '총, 균, 쇠'가 세계 불평등에 대한 이전의 지리적 설명에 내재된 인종 차별을 되살렸다고 비난했죠. 다이아몬드는 인종 차별을 강력하게 부인했지만요. 학문적 비평가들은 텍스트의 일부 부분에서 사실 오류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증거를 지적했는데, 이는 진지한 비판을 받을 만했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훨씬 더 나아가 그의 주장의 기본 전제를 완전히 무시하고, 우리가 우리의 풍경, 우리의 농작물, 우리의 질병, 우리의 자원의 지리적 우연에 의해 영향을 받는 생물이라는 분명한 진실을 옹호했다는 이유만으로 다이아몬드를 과거 시대의 혐오스러운 사상가들과 부당하게 묶어버렸어요.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학술 저널에 "F**k Jared Diamond"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니까요.

다이아몬드는 너무 많은 비판에 직면해서 지금은 자신의 웹사이트에 포괄적인 답변을 게시했는데, "저는 '지리적 결정론'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지리적 고려 사항에 대한 반사적인 거부가 들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듣거나 읽을 가치가 없는 의견이며, 지적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라고 말했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의 불평등에 대한 극좌와 극우 설명 사이의 분열이에요. 사회 과학자 클린트 발링거가 지적했듯이 일부 독단적인 우파 사상가들은 불평등을 보고 가난한 사람들을 비난하며 종종 인종 차별적 어조를 사용하죠. 이 사상가들은 가난한 나라의 문화가 어떤 면에서 결핍되어 있다거나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제대로 기능하는 정부를 건설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거나 그들의 종교가 충분히 "프로테스탄트 노동 윤리"를 육성하지 않는다고 말해요. 이것이 바로 "그들의 잘못"이라는 관점이죠. 그 관점은 순진하고 단순하며 증거로 뒷받침되지도 않고요.

좌파에서는 일부 사상가들이 사회 간의 광범위한 불평등을 순전히 식민주의와 같은 억압으로 돌리며 "그들은 피해자였다"는 관점을 취하죠. 식민지 사람들은 피해자였고, 식민주의의 상처는 계속해서 사회를 찢고 번영을 약화시키고 있어요. 설명의 상당 부분은 식민주의와 역사의 잔혹 행위에서 비롯되는 거죠. 따라서 좌파에서는 다이아몬드의 주장이 식민주의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으로 여겨졌어요. 마치 지리적 설명에 어느 정도 여지를 두는 것이 식민주의의 오점을 지워버리는 것처럼 여겨졌다는 거죠.

하지만 이 반대에는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피해자 신분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설명은 설명적 책임을 뒤로 미룰 뿐이라는 거죠. 식민주의는 혐오스러운 일이었고 불평등을 심각하게 악화시켰지만, 현대의 불평등이 강력한 유럽 국가가 비교적 덜 발전된 비유럽 국가를 억압했기 때문에만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강력한 유럽 국가가 처음부터 왜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여전히 아프리카가 유럽을 식민지화하는 대신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야 해요. 식민주의 이전의 격차를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죠. 그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는 거예요.

비평가들은 잘못 알고 있어요. 일부 불평등이 지리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더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핵심 아이디어는 인종 차별적이지 않고 반인종 차별적이에요. 이 분명한 진실을 무시하면 반인종 차별주의자들은 강력한 증거 무기를 빼앗기는 거예요. 왜냐하면 지리가 우리의 궤적에 의미가 없다면 일부 사상가들은 인종적 본질주의의 신화를 파는 유해한 설명에 더 유혹될 것이기 때문이죠. 즉, 일부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는 신화요. 식민주의의 광범위한 폐해는 실제로 사회 간의 현대적 불평등을 설명하는 주요 요인이에요. 하지만 인간이 아닌 다른 요인도 있죠. 지리가 운명은 아니지만 중요해요.

세계는 인간의 번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리적 특징이 엄청나게 다양하잖아요. 담수는 생존뿐만 아니라 관개에도 필수적이죠. 어떤 곳은 가지고 있지만 다른 곳은 가지고 있지 않아요. 생육 기간은 위도, 토양 유형, 광물, 강우 패턴, 기후, 심지어 햇빛의 각도에 영향을 받죠. 어떤 지역은 비옥함으로 축복받았고, 어떤 지역은 불모함으로 저주받았어요. 어떤 지역은 맹렬한 포식자와 심각한 질병에 직면하고, 어떤 지역은 둘 다 없어요. 지구는 지리적 복권을 만들어냈고, 어떤 사회는 이겼고, 어떤 사회는 졌죠.

다음 사고 실험을 생각해 보면 분명해져요. 인간이 없는 지구를 상상해 보세요. 그런 다음 마법처럼 세 그룹의 인간을 지구의 육지에 무작위로 배치해서 새로운 문명을 시작하게 하는 거예요. 한 그룹은 풍부한 담수, 비옥한 토양, 아름다운 온화한 기후를 가진 프랑스의 루아르 계곡에 도착하고, 다른 그룹은 호주 아웃백에 도착하고, 세 번째 그룹은 불행하게도 짧은 생애 동안 남극에 배치되는 거죠. 당연히 지리, 지질학, 기후가 그 그룹의 운명을 부분적으로 결정할 거예요. 지리가 인간의 궤적과 불평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은 역사 전반에 걸쳐 저질러진 잔혹 행위나 인간의 결정, 문화, 기타 전통적인 역사적 이야기의 측면의 중요성을 결코 부정하지 않아요.

우리 세계와 우리 종의 오랜 역사적 궤적은 마그마의 움직임과 그 위에서 서핑하는 지각에 의해 만들어진 우연과 재난에 의해 형성되어 왔죠. 만약 우리가 모든 위치가 다른 모든 위치와 동일한 균일한 세계에 살았다면 무역도 거의 없고 이주할 이유도 거의 없을 거예요. 문화가 수렴되어 인간 경험의 가장 풍요로운 선물 중 하나를 없애버릴 수도 있죠. 고맙게도 지각판이 충돌하고, 찢어지고, 서로 미끄러지면서 살기에 매혹적인 장소가 만들어졌어요. 우리는 그것에 감사해야 하는 동시에 인종 차별적 학대로 인해 발생한 깊은 역사적 불의와 지구 지각의 우연한 움직임의 조합으로 인해 발생한 끔찍한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하죠.

그렇다면 지구의 복권과 인간 시공간 우연성은 실제로 어떻게 나타날까요? 글쎄요, 가장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인과 관계를 찾을 수 있어요. 도널드 트럼프가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한 원인은 부분적으로 고대 지질학에서 찾을 수 있다니까요.

벨로시랩터가 지구를 돌아다니던 백악기 시대에 거대한 내해가 지금의 미국 대평원과 딥사우스를 형성하는 땅을 덮고 있었죠. 그 얕은 바다와 해안선을 따라 식물성 플랑크톤이라고 알려진 수조 개의 현미경적 식물과 같은 유기체가 번성했죠. 죽으면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영양이 풍부한 백악기 암석층으로 변했어요. 결국 바다가 후퇴하면서 현대 미시시피, 앨라배마, 조지아 땅이 물에서 드러났죠. 하지만 영양이 풍부한 백악질은 그대로 남아 나중에 풍부한 검은 흙이 되었어요. 수백만 년 후 그 고대 내해의 초승달 모양의 해안선은 미래의 미국에서 가장 비옥한 땅을 만들게 되는 거죠.

수백 년 전 영국에서는 면화를 생산하는 새로운 도구가 발명되면서 산업 혁명이 시작됐죠. 면화를 재배하기 가장 좋은 곳은 공룡 시대에 내해의 해안선이 만들어낸 풍부한 검은 흙인 블랙 벨트 지역의 미국 남부였죠.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삼아 북미로 데려왔을 때 그들은 면화가 번성하는 곳에서 살고 일하도록 강요했죠. 남북 전쟁 직전 노예 농장의 위치는 아래와 같이 표시되어 있는데, 초승달 모양의 면화 생산은 수조 개의 식물성 플랑크톤의 미세한 사체가 비옥한 토양을 만든 곳인 고대 내해의 해안선이 있었던 초승달 모양의 소용돌이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죠.

하지만 그 고대 내해에서 나온 풍부한 검은 흙은 인간의 궤적을 바꾸는 것을 멈추지 않았어요.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패배는 부분적으로 조지아 주에서의 근소한 패배에 달려 있었고, 상원 통제권, 그리고 조 바이든의 2020년 승리 이후의 모든 정치적 의제는 조지아 주에서의 민주당 승리에 달려 있었죠. 믿기 어렵겠지만 그 승리 마진은 백악기 해안선에서 얻어졌죠. 카운티별 선거 결과를 보면 여전히 암석이나 흙이 아닌 투표 패턴에서 해안선을 분명히 볼 수 있거든요. 과거 노예로 살았던 조상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후손들은 여전히 과거 면화 농장 근처에 살고 있어요. 대부분의 미국 선거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10명 중 약 9명은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죠. 도널드 트럼프의 패배와 미국 상원의 민주당 통제는 고대 바다의 식물성 플랑크톤의 역사적으로 우연한 인구 통계학적 영향에 부분적으로 기인한 거예요.

모든 것은 우연으로 가득 차 있죠. 우리 삶은 살아있는 사람들과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의 결정에 의해서도 형성되지만 지구의 복권에 의해서도 형성돼요. 이제부터 살펴보겠지만, 그것은 또한 당신 자신을 포함한 모든 개인이 말 그대로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죠.

참고로 인간 역사를 형성한 기후에 대한 결정적인 설명으로, 환경 요인이 우리와 교차하는 많은 예 중 하나를 제공하죠. 어휴, 오늘 이야기 진짜 길었네요. 다음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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