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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culating...

아,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얘기해볼 주제는... 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960년대 사회, 정치적 격변기에 기업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반발, 그리고 그 이후의 변화들에 대해서 한번 쭉 훑어보려고 합니다.

사실 1960년대는 정말 다사다난했죠. 비틀즈가 음악계를 완전히 뒤집어놨고, 미니스커트가 유행하고, 피임약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고... 케네디 대통령이 당선됐다가 암살당하기도 하고. 진짜 뭐랄까, 격동의 시대였어요.

이 시기에 기업은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았는데, 그만큼 비판도 많이 받았죠. 막 위트있는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리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퇴임 연설에서 그 유명한 '군산복합체'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잖아요. 또, 경제학자 갤브레이스는 기업이 사회를 너무 많이 통제해서 견제 세력을 넘어섰다고 주장하기도 했고요.

초창기 기업 지배구조, 기업 이론, 조직 이론, 경영 전략 같은 분야의 중요한 문헌들이 대부분 이 시기에 나왔는데, 특이한 점은, 전부 제너럴 모터스, 즉 GM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거예요. GM이 당시 기업의 전형이었고, 또 비판의 대상이기도 했으니까요. 마치 1960년대 대학생이 경영학 도서관에서 GM 말고는 다른 미국 기업은 없는 줄 알았을 정도였다니까요.

근데 또 그 학생이 도서관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정신이 팔렸을 수도 있어요. 왜냐면, 1965년에 베트남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사회가 엄청나게 분열됐거든요. 젊은이들은 군대에 가거나, 아니면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거나... 1968년에는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와서 시위를 벌였고, 그 결과 미국과 프랑스 대통령이 물러나기도 했죠.

독일에서는 루디 두치케라는 사람이 학생 시위를 주도했는데, 이들은 기존 정치 체제 밖에서 활동하는 세력이었죠. 1966년에 기독교민주연합하고 사회민주당이 대연정을 하면서 좌파 세력이 분열되기도 했고요. 또, 바더-마인호프 그룹이라는 극좌 테러 단체도 등장했고요. 전 세계적으로는 1968년 파리에서 가장 큰 시위가 일어났는데, 학생들하고 노동자들이 연대해서 프랑스 경제를 거의 마비시키다시피 했어요.

파리 시내에서 경찰한테 돌을 던지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아이젠하워나 갤브레이스처럼 점잖게 기업을 비판하지 않았어요. 그냥 '자본주의를 타도하자!' 이렇게 외쳤죠. 이들은 안토니오 그람시, 허버트 마르쿠제, 놈 촘스키 같은 지식인들한테서 영감을 받았고요.

이런 반발은 여러 가지 결과를 낳았어요. 두치케는 "제도 속으로의 긴 행진"이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이건 마오쩌둥의 대장정처럼, 좌파 성향의 젊은 졸업생들이 여러 직업 분야에 침투해서 장기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전략을 의미하는 거였죠. 반세기가 지난 후에, 보수 논객들은 이 긴 행진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도 해요.

돌멩이 말고도, 말의 힘도 셌죠. 예일대 교수 찰스 라이시는 '미국의 녹색화'라는 책에서 1960년대의 반문화가 전통적인 관료 조직을 파괴할 거라는 주장을 펼쳤고,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화학 회사들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걸 비판하면서 현대 환경 운동의 토대를 마련했죠. 또, 폴 에를리히는 '인구 폭탄'이라는 책에서 1970년대에 수억 명이 굶어 죽을 거라고 경고하기도 했고요. 물론 에를리히의 예측은 빗나갔지만요. 한편 랄프 네이더가 GM을 비판해서 회사가 엄청난 타격을 입었는데, 나중에 GM이 네이더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매춘부를 고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 큰 비난을 받았죠.

어떻게 보면 예상치 못한 결과였는데, 지식인 사회에서 기업에 대한 적대감이 커지면서 그에 대한 반발도 거세졌어요. 밀턴 프리드먼은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 기고한 유명한 글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늘리는 것이다"라고 주장했어요. 프리드먼은 기업이 고용을 창출하고, 차별을 없애고, 환경 오염을 피하는 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은 사회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하면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자유 사회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지식인들의 꼭두각시라고 몰아세웠죠.

1971년에는 기업 변호사 루이스 파월이 미국 상공회의소를 위해서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이 보고서에서 파월은 기업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더 신중하고 사려 깊은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특히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대학에서 기업 문제를 옹호하는 학문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죠. 얼마 후에 파월은 닉슨 대통령에 의해서 대법관으로 지명되기도 했고요. 1972년에는 GE의 프레드 보르크하고 알코아의 존 하퍼가 주도해서 미국 최대 기업들의 CEO들로 구성된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을 설립했어요. 지금은 워싱턴에 직원이 50명 정도 있는 강력한 로비 단체가 됐죠.

파월의 보고서는 큰 영향을 미쳤고, 그의 전략은 효과적이었어요. '제도 속으로의 긴 행진'은 좌파뿐만 아니라 우파도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었던 거죠. 기업에 우호적인 학문 연구는 기업이나 부유한 사업가들이 설립한 자선 재단을 통해서 자금 지원을 받았고, 헤리티지 재단이나 케이토 연구소 같은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들은 워싱턴에서 정치적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두치케가 급진적인 학생들한테 직장에 가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치라고 촉구했다면, 파월은 전통적으로 비지성적이었던 기업들이 지식 세계에 참여하도록 장려한 거예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화 전쟁의 기원을 50년 전의 이런 사건들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도, 뭐, 아주 억지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1960년대에 런던에서는 킹스 로드하고 카나비 스트리트에서 '스윙잉 식스티즈'를 즐겼지만, 런던 금융가에서는 그 못지않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어요. 영란은행은 유로달러 시장의 발전을 장려했는데, 이 시장에서는 미국하고 유럽 은행들이 연방준비제도의 감독을 받지 않고 달러를 거래했죠. 이게 금융 시장의 급속한 확장, 국제화, 규제 완화, 그리고 재규제 과정의 시작이었고, 이 과정은 2008년 금융 위기까지 계속됐어요.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으로 국제통화기금(IMF)하고 세계은행이 설립되고 고정환율제를 기반으로 하는 세계 금융 시스템이 구축됐는데, 베트남 전쟁은 정치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도 야기했어요. 1960년대부터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기 시작했고, 1971년에 닉슨 대통령은 금본위제를 포기하면서 각국 통화의 가치가 자유롭게 변동하게 됐죠. 그리고 이스라엘하고 아랍 국가들 간의 욤 키푸르 전쟁은 석유 가격 폭등을 불러일으켜서 인플레이션을 더욱 심화시키고,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국가들의 재정 상황을 크게 개선시켰어요.

1970년대에 이런 정치, 경제적인 변화가 일어나면서 영국하고 미국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추진되기 시작했어요. 1974년, 에드워드 히스 총리가 이끄는 영국 보수당 정부가 노동당에 패배했는데, 노동당 정부의 좌파 정책은 1976년에 석유 파동의 영향으로 무너지고, 영국은 IMF의 지원을 받아야 했죠. 1978년부터 79년까지 '불만의 겨울'이라고 불리는 시기에는 파업이 끊이지 않았고, 1979년 5월에 마가렛 대처가 이끄는 우파 보수당이 선거에서 승리했어요. 1980년에는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로널드 레이건한테 패배했고요. 1980년대에 영국하고 미국에서는 시장 중심적이고 기업 친화적인 정책들이 추진됐는데, 이걸 신자유주의라고 불렀죠. 물론 신자유주의라는 용어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적은 거의 없었지만요.

영국하고 미국은 우경화됐지만, 프랑스는 다른 길을 갔어요. 1981년에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는데,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국민의회를 해산하고 사회당이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도록 만들었어요. 그 결과 여러 은행을 국유화하고 복지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는데, 미테랑의 좌파 정책은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프랑 프랑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2년도 안 돼서 끝나버렸죠. 결국 그는 '긴축 정책으로의 전환'을 발표했어요.

미테랑의 유턴은 북반구에서 사회주의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40년 만에 정권을 잃었고, 독일에서는 기독교민주연합하고 자유민주당이 연립해서 우파 정부를 구성했어요. 1989년부터 1991년 사이에 소련이 붕괴하면서 '현실 사회주의'도 사라졌고요. GM이 지배적이었고, 케네디 대통령 후보가 러시아의 미사일 능력이 미국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했던 1960년대에 비하면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죠.

자, 그럼 앞으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리고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기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들을 앞으로 계속 고민해봐야겠죠. 음,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할게요.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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